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더라
창세기 2장 25절에서『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벌거벗은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이 영의 옷을 입듯이 인간도 옷을 입는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벌거벗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영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영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옷을 벗고, 이 세상의 흙으로 된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하늘로 부터 오는 처소가 영의 몸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이 몸을 입어야 하는데, 하늘의 처소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말이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리스도의 할례는 육의 몸을 벗는 것이다. 이 말은 로마서 6장 4절의 말씀과 같은 표현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세례를 통해서 육의 몸이 죽지만, 하나님께서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새생명은 곧 영의 몸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3장 17-18절에서 네가 말하기를『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벌거벗었다고 말하신다. 영적인 이야기 일 것이다. 영의 몸을 의의 옷, 그리스도의 옷이라고도 말한다.
영의 몸에 대한 표현은 고린도전서에서 사도바울이 부활을 설명하면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육의 몸을 옛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죽는 것은 곧 옛사람(육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벌거벗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이 육을 입고 있지만, 영의 몸이 없으므로 벌거벗은 것이다. 그래서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 육을 벗어야 하는데, 육체를 죽일 수 없으므로,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육의 몸(옛사람)과 영의 몸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가지는 표현이다. 육의 몸이 죽어야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몸으로 태어난 자를 말한다.
비록 현실적으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의 몸이 있다는 것이다. 대신 육의 몸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 영의 몸은 죄가 접근하지 못한다. 요한1서 5장 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하나님으로부터 난자는 영의 몸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의 몸을 가진 자도 현실적으로 육체가 있다. 이 육체는 육의 몸(옛사람)이 죽었지만,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육체 속에서 영의 마음이 날마다 이들을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고,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유다서 1장 6절에서『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흑암은 물질세계(세상)를 말한다. 자기 처소라는 것은 하나님의 처소(집)다. 즉 천사들이 영의 몸을 벗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돌려받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예수님이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시면서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는 죽으면『천사와 같다』라고 말씀하신다.『천사와 같다』라는 표현에 대해서, 예수님이 사두개인들과 대화를 하는 요지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이 땅에서 결혼하지만 천국에서는 천사와 같이 결혼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도 되지만, 영적 의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낸다. 일곱 형제의 아내는 누구의 아내인가 라는 질문이겠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부부의 모습은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아내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천사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런 존재들이라는 표현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려면 영의 몸(의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창세기 6장 2-3절에서『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의 몸을 벗고, 세상의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먼저 아담(남자)으로부터 여자가 나오고 결혼하여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되었지만 영의 몸이 없으므로 영이 죽어버리고 육의 몸을 입어, 죽어야 할 육신이 된 것이다.
아담 안에서 이 세상에 오는 모든 지체들은 자신들이 영의 몸을 벗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었는데,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세상에 흙 속에 갇혀버리고 육의 몸을 입어 인간이 된 것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해주시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이 아버지였으며, 탕자의 비유에서 처럼 아버지께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으로 갈아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7절에서『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후에 벗은 것을 알게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므로, 그들의 장막(옷)을 벗고, 이 땅에 오게 된 것이다. 이 땅에 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벗은 것을 깨달아야만 하는데,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외에는 이 땅에서 다 심판해버렸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한 민족을 택하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율법이다. 선악을 통해서 자신의 상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3장 19-20절을 통해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무화과나무)을 택하시고 율법을 주셔서 벗은 것을 깨닫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깨닫지 못했다. 자기의 의로는 영의 몸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율법에만 의지했다. 영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율법에 의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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