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장 11-14절『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는 미혹하는 자인가 아니면 진리를 선포하는 자인가의 차이다. 그런데, 미혹과 진리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태복음 24장 4-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진리의 말씀이 기갈되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믿을 수가 있겠는가?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그 교회가 벌거벗고 궁핍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면, 참 진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악을 판단하는 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들이며, 사탄의 미혹을 따라간 자들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서 감추어진 생명나무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들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며, 참형상이 아니다. 좋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신 것이다. 구약에서 짐승을 죽여서 속죄제를 드린 것은 그림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참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시므로 이제는 율법에서 정하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속죄를 위한 대속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을 때, 마음에서 성령으로 인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정하는 제사뿐만 아니라 모든 율법의 규정이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는 하지 않지만, 율법 중에서 사회법이나 윤리적인 법 조항은 지켜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예를 들어서 십일조의 규정도 율법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 말씀의 기갈 상황을『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로 표현했다. 온 세상에 하나님 말씀이 있다고 하지만, 진리의 말씀을 찾으려고 해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이나 기적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을 고치고, 미래를 예언해주고, 세상적 복을 받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들도 다 미혹일 가능성이 높다. 

고린도후서 11장 13-15절에서『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구원은 어떤 환상을 받거나 기적을 체험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었음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거듭남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다. 자기라는 존재가 부인되어야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신다. 자기라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막을 뿐이다. 마태복음 15장 9절에서『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또한 마태복음 15장 14절에서『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신명기 18장 20-22절에서『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일이다. 믿는 것은 아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과 연합되는 것이다. 십자가 이외에 전하는 것은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전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 외에의 것을 말한다면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다. 그래서 미혹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뜻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하시는데,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매일 죄와 같이 살면서 날마다 예수의 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서, 세상을 사랑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다. 사도바울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킴으로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결국 자기의 의만 키운 셈이다. 오늘날도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결국 자기의 의를 키우는 자가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렇게 될 수도 없으며, 노력을 해도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에 의지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이외의 것을 전한다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날마다 죽은 자의 모습을 기억하며 살 것인가의 핵심은 자기를 부인할 것인 것 아닌가의 차이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것은 자기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자기라는 존재가 죄로 얼룩졌는데,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라는 존재는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서 거룩하게 될 존재가 아니라 죽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에게 예수의 피값으로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신다. 죄의 문제가 아니라 죄를 일으키게 하는 악(어둠:옛사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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