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마태복음 12장 22-28절)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셨는데, 유대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러서 귀신을 내쫒은 것이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죄는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을 수 없다』라고 하셨다. 많은 교회사람들이 성령훼방 죄에 대해서 참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그 말을 꺼내면 거북해 한다. 뭔가 분명하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혹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 훼방죄를 짓지는 않는 것인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쳤다는 성경 말씀을 접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이런 권능을 보일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 창세기 1-3절의 내용을 통해서 인간들이 본래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는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말미암아 다 사단의 자식들이 되었고, 다 귀신에 들려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따라서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소경인 것이다. 하나님과 대화가 안되면 그게 벙어리인 것이다. 예수님께 데려온 그 사람이 귀신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 되었다 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말한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데,『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아니면 자기의 죄 때문이가요』라고 물었다. 예수님은『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고 자기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하셨다.『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는 다른 의미로서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다.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그 소경되었던 자는 예수님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너희도 이 소경처럼 다 소경인데 너희의 눈을 뜨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세상에 온 것은 보는 자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로 하여금 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그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는 본다고 하니 그리스도를 보고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라는 것이다. 못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라는 것이다. 본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다 소경이라는 것이고, 소경이라는 사람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눈을 뜨게 된다 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너희들은 다 눈을 뜨고 있다고 하지만 모두 소경이므로 눈을 떠서 그리스도를 만나 라는 말씀이다.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요지이다. 그것과 같이 마태복음 12장에 귀신들려 소경되고 벙어리 된 자들을 예수님께서 귀신을 쫒아내고 눈도 뜨고 말도 하게하는 뜻은 너희가 다 사단의 자식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소경이요,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진 벙어리들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들을 하나님께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의 눈을 뜨게 하고 말을 못하는 것을 말하게 하는 일들은 예수님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어두움의 권세에서 눌려있는 소경된 자, 벙어리 된 자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성령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오랜 세월 동안에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믿지 않고 표적을 원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령과 더불어 큰 표적을 일으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그 여자의 후손이요, 그 선지자요, 너희가 바라는 메시야요, 너희를 구원할 자 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안 믿고, 성령께서 기적을 통해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군중들은『아,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을 했다. 이 군중들의 입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이 이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그 선지자라고 군중의 입을 통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증거를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증거할 분이 없다 라는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성령의 증거를 믿지않는 것이 성령훼방죄이다.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죄가 된다.
성령훼방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죄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만 한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에 속하지 않는 것이 성령훼방죄이다. 성령훼방죄를 제외한 모든 이 세상의 죄가 사람의 죄와 훼방죄 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세상죄다. 세상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훼방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라는 말이다. 세상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라는 말의 시제가 중요하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을 것이로되』라고 되어 있으며, 그 시점은 세상죄를 예수님이 2000여년 전에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때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오셨을 때,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세상죄를 다 가지고 갈 것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죄를 다 사함심을 받지만 성령훼방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갔지만 그러한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성령훼방죄가 남게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성령훼방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죄에 대해서는 죄가 발생할 때 마다 회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2000여년 전에 이미 세상죄를 다 가져 가셨다. 예수님께서 세상죄를 다 가져갔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여전히 오늘날에 사는 교회사람들은 죄에 대한 회개를 주장한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갔다 라는 말은 그 때까지만 발생한 일은 다 용서하셨는데, 그 후에 발생한 일은 용서안했는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2000년 후에 태어난 사람에게도 다 적용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을 가졌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었으므로 로마서 8장 1절에서 처럼 정죄받지 않는다. 그래서 회개는 죄를 지은것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죄짓게 하는 옛사람이 예수와 죽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은 단 한번으로 족하다.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을 떠 올린다. 그 보혈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적용될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이 돌이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세상죄에 대해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라는 것이다. 인간적 생각를 버리고 하나님 마음으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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