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한마리의 어린양을 찾으시는 목자
(마태복음 18장 12-14절)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목자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다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다. 산은 예루살렘 성이 있는 시온산, 즉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아혼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런데 잃어버린 양 한마리는 바로 이방인,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이 이방인을 행해서 나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방인들에게 나가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 12절에서 예수님이『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시는 것이다.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다. 광야에서 40년간 맛나를 먹이시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셨다. 그러나 광야에서 드러난 것은 그들의 불순종과 허물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 인간이 지켜야 할 기준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웠다. 그들은 예배가운데 순종으로 주님이 함께 하셨다. 그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을 주님으로 인해서 이겼다. 그들에게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 말씀을 받드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타락했던 것이다. 예배가 쉰 적이 없고 말씀이 없는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타락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다. 선지자들은『너희가 보고 있는 말씀에 의하면 너희는 회개해야만 해』라고 외쳤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전적 타락의 모습이다. 평생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사람을 돌로 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멸망할 때까지 선지자들을 계속 보냈는데, 그들은 아무도 자기네 나라가 멸망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을 통한 모든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상태가 이렇다 라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회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님은『모른다』라고 말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구약시대의 충격이 지금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주님은 우리의 열매를 보고 안다고 말씀하신다. 열매가 없는 나무는 잎사귀가 무성해도 찍혀 불에 던지운다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다 구원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회개하지 않은채 믿고 있다는 증거이다. 회개하지 않고 착실히 믿고 있는 것이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그 믿음은 주님과 연합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회개하는 자를 그냥 사는 것이다.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생각일 것이다. 자기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신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여전히 잃어버린 양이 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여전히 영적 이방인인 것이다.
영을 살리는 생명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하나님께 구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주신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양 일백 마리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열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충만한 것을 나타낸다. 일백은 열의 열이다. 즉 더욱 더 충만하다는 것이다. 양 일백 마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더 넓게는 천하만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양 일백 마리는 이스라엘을 염두에 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에서『잃다』라는 말의 원어는『죽다, 파괴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9장 39-41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맹인은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며,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경인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심판하시는 내용은『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하고, 보는 자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세리나 죄인들이다. 보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자칭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보게 한다는 것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바리새인들이 자칭 하나님 나라를 본다고 하므로,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의 눈을 감겨버리는 것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돌이킨다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하여 회개를 생각하고 있지만, 회개의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며 그래서 돌이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탐욕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이 회개다. 탐욕을 포기하는 것은 육체 속에 숨겨진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육의 탐욕은 자기라는 주체로 나타난다.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탐욕의 뒤에는 사탄이 뱀처럼 숨어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회개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이와같이 회개한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을 떠난 양이다. 그런데,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양이 한 일은 목자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다. 양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이 목자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양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순순히 목자를 따라 가는 것이다.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을 말한다. 목자를 떠난 양이 죄인이다. 양이 목자를 만나면, 돌아갈 수 있다. 양이 목자를 따라가는 것이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예수님이 다시 설명하시는데, 바로 삭개오의 이야기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통하여,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혼아홉 마리의 양은 자기의 의를 내세워 자칭 의인이라고 말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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