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히브리서 6장 4-6절『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많은 교회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지으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날마다 율법을 바라보며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면서, 또한 죄를 지으면 즉시 회개하여 예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은 변경될 수 있는 것인가?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들은 누구인가? 양들이다.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그의 양들은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0장 25-2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데,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을 하는 자는 누구의 생각인가? 아마도 자기 생각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양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좁은 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도 않았으면서 예수믿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의 눈으로 구원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예수님의 양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고 온 자들이다. 하나님이 이끌어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구원의 개념을 왜곡한다. 하나님이 이끌어온 자들은 에베소서 3장 25-26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님의 양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율법에 갇혀있는 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율법에 갇힌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성령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중요한 관건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아닌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이므로,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구원의 문에 들어가지도 않은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는 않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거룩한 삶,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 그래서 성화되어 가는 자기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런데 이 모든 자기라는 모습은 십자가에서 다 부인되어야만 한다. 자기가 믿는 믿음은 구원의 문에 들어간 자가 아니므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 것이다. 
따라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도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구원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구원에 들어가지 않은 자들이다. 

따라서 구원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믿음의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라는 단순한 논리로 구원을 말하므로서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결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어서 구원받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초보들이다. 히브리서 6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그리스도의 초보자들은 히브리서 5장 13-14절에서『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그리스도 초보자들은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서 판단하는 자들이 된다. 그래서 율법을 바라보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며, 또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선언해주셨다. 그런데, 『빛과 같이 소금과 같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은 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 말에 대해서『구원을 받았지만, 신앙인답지 못하게 산다면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금은 맛을 잃지 않는다. 소금 맛이 없는 것은 소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금이 점차 잘못되어서 소금의 짠맛이 서서히 변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소금이 아닌 것(이물질)은 밖에 버려진다는 의미다. 염전에서 소금을 수확했는데, 소금기가 없는 것이 발견되면 밖에 버려진다는 말씀이다.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한다. 소금기가 없는 이물질은 언약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레위기 2장 13절에서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마태복음 22장 14절에서『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왕이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종을 시켜 아무나 데려오도록 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어서 어둔 곳으로 내어쫒으라고 명령했다. 사람들는 이를 두고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구원을 비유한다면 정말 망령되이 말하는 것이다.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고, 택함을 받은 자가 구원받은 자들이다. 구원받아야 할 대상인 청함을 받은 자는 예복을 입어야만 택함을 입게된다. 예복은 그리스도의 옷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이 의의 옷으로 입혀주시는 것이다.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을 입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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