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마태복음 13장 36-43절)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심판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안에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마귀를 선택했다. 마귀의 질문에 반응하고 답하므로 마귀의 말을 쫒아갔다. 하나님의 사랑 만을 생각한다면 구원에서 멀어진다. 그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예표가 솔로몬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여디디아』라고 이름을 주셨다. 그 말의 뜻은『사랑받는 자』라는 말이다.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 하나님으로 부터 지혜를 물려받았다. 그는 아담처럼 모든 것을 다 받은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탕자는 솔로몬처럼 사랑의 아버지 집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 마치 아담처럼 그렇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노아가 전한 것이다. 노아가 전한 것이 바로『의의 도』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사랑의 도』가 아니라『의의 도』다. 의가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다 소경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말하기를『백성들에게 말하라, 올라오는 자는 다 죽으리라』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와 흑암으로 나타나는 구름을 들으면서 모세에게 말했다.『우리는 하나님이 무서워서 다가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싶지 않소이다. 당신이 듣고서 우리에게 말해주시요』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했다.『저들은 올라오리라 그들은 돌파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충돌할 것이다』올라오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올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스스로『무서워서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의 상태였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기 전에 교회를 평생다녀도 모두가 소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소경이 되면 옛사람인 것이다.『십자가 앞에서는 다 나를 버리리라』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이마나 손에 표를 새기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에게 절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고 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다 표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않는 자는 다 표를 받게 된다. 회개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 만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야 구원받는다. 열처녀의 비유도 마찬가지다. 등불을 켜고 안 켜고가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회개한 자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자 만이 구원받는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인을 뗄 때마다 온 땅을 심판하신다. 일곱 교회에도『잘못하면 토하여 내 친다』고 말씀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 복음이 선포되면 심판이 함께한다. 그 복음을 받아드리는 자에게만 구원이지만 그 복음을 받지 않는 자는 심판인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회개하라는 것이다. 자기부인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인이 떼어지고 대접이 열려 하나님이 심판을 하는 동안에도『저들이 회개치 아니하니라』라고 했다. 죄악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어도 회개하지 않는다. 노아 때도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군대 귀신을 쫒아낸 일이 있었다. 동네 거라사에서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귀신들이 말하기를『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히기 위하여 이렇게 하시는거냐』고 말하면서『무저갱으로 가지 않게 해 주소서, 저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귀신도 주님께 기도하고, 허락을 받는다. 주님이 주관자 이심을 알고 있다. 그래서 수천마리의 돼지 때가 갈릴리 바닷물로 달려가서 떼죽음을 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예수가 떠나가도록』요청했던 것이다. 인간은 귀신이 나가는 역사가 일어나도 회개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어도, 귀신이 떠나가도, 인간은 그것 때문에 회개하지는 않는다. 복음이 선포될 때 유일한 회개의 기회를 잡는다.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온다. 복음은 구원의 말씀이지만 심판의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구원의 복음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을 것이 아니라 심판의 복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복음이 선포될 때 구원과 심판은 동시에 다가온다. 구원과 심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다.
로마서 3장 9절에서『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사람들은 사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죄 아래 있어서 심판받아야 할 존재인 것이다. 인간들이 보기에 선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심판받아야 할 존재다. 선은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서 나오는 선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3장 10-12절에서『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그리고 13-17절에서는 인간의 상태를 말한다.『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율법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율법에 따라 죄를 짓는지 살펴보고 스스로 의를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은 자들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간 것을 믿고, 오직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심판의 기준은 의롭게 되었는가의 여부다. 의롭게 되는 기준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서『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생명책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가 스스로 의를 이루기 위해 행한 행위에 따라 다른 책에 기록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