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버리는 믿음
(마태복음 26장 47-56절)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베드로는『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다. 그래도 육신으로 부터 나오는 혼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 사람들도『베드로가 검으로 귀를 베는 그런 식으로』믿고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것을『육신』이라고 표현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영은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적을 보고 배우고 해도, 십자가의 죽음을 따를 믿음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의 상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풍랑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하고, 변화산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그런 상태다.『믿음이 오기 전』이란 내적 변화가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를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그 후에는 나를 따를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그 후』가 바로『내적 변화가 이루어진 후』다. 내적 변화가 이루어 진 자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따를 수 있다는 말씀이다. 내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전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다 도망가는 것이다. 이 생명을『육신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육신으로 비롯된 혼은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영』만이 구원받는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육신적인 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이것이 회개다. 회개하지 않은 것은 성화가 안된 것이 아니라, 구원이 시작 되지도 않은 것이다. 예수를 죽인 자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율법을 맡은 자들이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다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을 깨닫는 자들이 회개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영접 기도하고 성령 체험한다고 해서, 그 안에 육신적 생각이 가득하다면 회개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 종류다. 십자가의 예수를 버리는 자와 예수와 함께 죽는 자들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결국 예수를 버리는 자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율법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와 연합될 수 없다. 예수를 버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율법을 통해서『내가 예수를 버린 자였구나』라고 깨닫는다면『내가 율법 아래에 있는 자였구나』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율법이 초등교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율법을 벗어나 예수와 연합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믿음이 오기 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예수를 버리는 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자인 것이다. 오직 예수와 십자가에서 연합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 뿐이다.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도 율법 아래 갇혀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5절에서『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에서『믿음이 온 후』는『회개하여 예수와 십자가에서 연합된 자』를 말하며, 율법으로 부터 벗어난 자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 줄로 생각한다. 그 믿음은 율법이 인도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냥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따르고 있지만『자기가 정말 구원받았는가?』고민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았다면 구원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길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자기 부인의 길이다.
마태복음10장 32-33절『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와 동일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 사데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흰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시인하지 않겠다』라는 말씀이다. 흰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예수님을 부인한 자와 같다. 교회를 나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권능도 행하고 선지자 노릇도 하는데,『의의 옷을 입지 못한 자』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부인하리라』는 말과 동일하다.
요한복음 8장 31-3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진리가 인생을 사단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케되려면,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만 한다.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예수믿으면 다 구원받는 줄로 생각한다. 중세 면죄부처럼 거짓말이다. 중세 때는 교황이 사제 외에는 성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주일 예배 때만 사제를 통하여 설교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의 말을 두려워해서 성경을 보지 못하고 사람의 말을 진리인 줄로 생각하고 따랐던 것이다. 면죄부를 팔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에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이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에게『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만 한다. 그래야 진리를 알게된다.『안다(히브리어:야다)』는 말은『경험한다』는 말이다.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 처럼,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뿐이다.
진리와 하나가 되어야만 진리가 삶의 주체가 된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예수인 진리가 주체가 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성경을 남에게 잘 설명해도 진리에 서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 있다. 진리와 하나되게 하는 그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34절에서『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38절에서『너희는 너희 아비(마귀)의 욕심을 행한다』고 했다. 이들은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얻으려고 한다. 혼과 영을 동시에 살리고 싶은 자다. 이게 욕심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둘 다 붙잡으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잃게 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성령도 구하고 세상의 복도 구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육체를 따라 사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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