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장 9-20절)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3장에서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깨달아야만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들이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된다. 상한 심령이다. 죽을 때까지 통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어야 함을 말한다. 이런 일이 없으면 4장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4장 2-3절에서『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이 믿음은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은 내용이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 4장 19절에서 설명한다.『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도 이런 믿음을 백세나 되어서 얻게된다. 이 믿음은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이 믿음은 거듭난 자를 가리킨다. 거듭난 자는 그 이름을 믿는 것이 단 한번에 믿어지는 것이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식이 쌓이고 노력하고 그래서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믿게된다. 이게 거듭남이다. 

그런데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 친척 집을 떠났지만, 25년이란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11년이 지난 86세에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낳은 자녀가 이스마엘이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이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나서 아브라함이 자녀를 스스로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여겨진 때였다. 그 때가 99세였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서『내년에 자녀를 주리라』라고 했다. 아브람이 속으로 웃으면서『내가 내년에 백세가 되고, 사래가 구십세가 되는데, 어찌 자녀를 얻으리요』 라고 응답했다. 이스마엘은 율법으로 태어난 자다. 마음 속에는 이스마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이스마엘이나 주 앞에서 살게하소서』 라고 말했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볼 때 구원의 길이 열린다. 많은 사람들은 내 체험, 내 판단이 기준이 된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기준은 전적 타락이기 때문이다. 이게 율법 아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다.『이스마엘이나 주 앞에서 살게하소서』이 말은 믿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쌓은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400년 후에 육신의 후손들이 1년만에 무너진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고기를 먹은 후에 애굽을 나와,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바로왕의 군대가 전멸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날부터 매일 맛나를 먹었지만,이것은 구원의 기준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일 뿐이다. 1년 후에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들어가서 율법을 지키게 해 주셨다. 그리고 믿음이 좋은 열두지파의 대표를 뽑았다. 40일 동안 보고 왔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모두가 들어가면 죽는다』라는 반응이었다. 

열명의 정탐꾼은 모든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본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는 정말 진실하게 들린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여전히 내가 주인인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선택의 주인이 나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가? 중간은 없다. 99%는 하나님이 주인이고 1%는 내가 선택한다고 말한다면   다 거짓이다. 다 양보해도 1% 이것만은 내가 결정해야된다고 말한다면 거짓이다. 내가 100%이든지, 하나님이 100%이든지 둘 중에 하나다.『뜨겁든지 차던지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미지근한 것은 안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여기에서 이전의 것(헬라어:아르카이아스)은 계시록에서 말하는 옛(아르카이아스)뱀을 말한다. 즉 옛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새사람인가 옛사람인가 둘 중의 하나다. 5장 15절에서『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이렇게 되지 않은 자는 옛사람이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말해도 다 나를 위해 예수를 믿는 것 뿐이다. 회개하지 않은 이런 사람들은 남들보다 믿음이 좋아서 열두지파의 대표가 될 수 있지만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온갖 기적을 경험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했다. 심지어는 모세와 엘리야가 이 땅으로 내려와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런데 예수님이『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주님 이 사람들은 당신을 버려도 나는 안버립니다』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자기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두려워 말라』라는 긍정적인 좋은 말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주인이면 다 주님을 부인하고 만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은 옛뱀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야 이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자녀를 준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내 계획과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 이렇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초월하시다. 인간의 생각을 넘어 완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아무리 주님을 체험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다. 그래서 교회를 수십년 다녔다고 하더라도 새 피조물이 아닐 수 있다. 옛사람 그대로 일 수 있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기적을 경험하고 성경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거듭나지 못한다면 다 옛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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