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로마서 12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문귀는 교회에서 암송하는 문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전에『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는 문귀가 있다. 변화를 받지 않고 주의 뜻을 분별할 수는 없다. 아무리 문귀를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변화를 받기 전에『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먼저 말한다. 

오순절 날 불의 혀가 갈라짐같이 성령이 임하셨다. 그들이 하나가 되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다. 초신자들은 성령을 받고 싶어하고 방언을 받고 싶어한다. 성경에서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이유는 복음의 전파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사도의 발 앞에 자기들의 재산을 전부 내놓았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게 된 것이다.

 성도들이 서로 필요한 것들이 서로 채워지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되면 거의 이단처럼 여겨지고, 대부분 자본주의 사고에 매여있게 됨을 발견한다. 성경을 읽고 주목하는 것은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지 내가 관심이 없는 영역에는 주목이 되지 않는 현실이다. 

다윗은 매일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매일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주의 뜻을 깨닫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주님은 사람을 찾으신다. 주의 뜻을 깨닫는 자를 찾으신다. 주님이 그 사람을 찾으시면 주의 뜻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

 사사시대가 끝날 무렵, 가정에서 고통받는 『한나』라는 여인이 있었다. 매일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며 성전에 나와서 기도에 힘을 썼다. 그 당시 엘리라는 제사장이 있었다. 유대 역사상 제사장을 하나님이 직접 쳐서 죽인 것은 엘리 외에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엘리는 한나의 기도가 술취한 사람처럼 보여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나는 그 가운데서도 기도했다. 그래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오해받는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나는 자녀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나 첩 부닌나는 자녀를 갖었다. 주의 뜻은 한나가 계속 뜻을 구하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한나는『자기의 혼을 쏟아 부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나는 사무엘이라는 아이를 생산하게 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이것을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에『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한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 이전에, 주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물이 없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해서 그것을 채워달라는 기도를 하기 전에 주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하는데, 먼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면 주의 뜻이 드러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이것보다 먼저가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이다. 

구약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였다. 그래서 주의 뜻은 주님을 의지하게 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고, 주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매일 구름기둥과 불기둥 아래서 보호받고, 매일 맛나를 먹었지만 가나안 땅 앞에서는 서로 나뉘어진다. 열두지파를 따르는 자들은 다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후에 사시기에 보면 많은 지파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쫒아내지 못했다. 주님의 뜻은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고 멸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지파는『가나안 족속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쫒아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도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철병거를 보는 순간 성경의 말씀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 약속을 이룰 것이다. 그 약속을 이루는 자들은 그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제물은 죽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살아있지만 제물이 되라는 것이다. 육은 살아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되어, 잃어버리는 영혼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을 찾아가시는 분이시다. 

구약시대는 주의 뜻은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는 것이지만, 신약시대는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시는 것이 주의 뜻이 된다. 잃어버린 어린양을 찾으러 갈 때, 성령이 함께 하신다. 성령은 힘을 주시고 증거하게 하신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은 사탄을 멸하는 것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것처럼 그렇게 행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멸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사탄을 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주의 뜻을 이루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나를 통해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육의 죽음은 이 기회가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어느 곳에서 우리가 삶을 마감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주의 뜻을 이루는 기회를 붙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제물이 전도라고 표현했다.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도행전 1장에서는『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8장에 이르러서 핍박이 일어난다. 성령이 임하셨지만 핍박에는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사마리아로 가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이 임했지만 전도를 위해 사마리아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안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핍박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로 가게 되면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를 하기 전에 먼저『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해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회개요 헌신의 삶이 된다. 이렇게 회개의 열매를 갖는 삶 속에서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크리스찬의 약 10%가 순교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인구 비례로 역사상 전무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 예수믿는 사람들이 10명 당 한명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핍박이 없는 곳에서는 미혹이 혼재되어 있다. 주님이 이런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 궁금해진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이 구별되어져야만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자기를 내어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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