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로마서 8장 23-32절)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 다음에 말씀하실 것을 생각해 보면『내가 내 아들을 너희에게 주었는데, 너희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적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도 가끔 있다. 주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너희들이 사단(마귀)의 종이 되었는데, 사단(마귀)에게 피값을 지불한 것이 내 아들이었다 내가 너희를 산다』라고 하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마귀의 종이 된다. 그러나 회개하고 아들 속으로 들어오면 하나님은『아들 속으로 들어온 자』를 사서 아들로 바라본다. 
죄가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있다. 그래서 마귀가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아들의 피를 요구한 것이다. 

주님은 2000여년 전에 피값을 다 지불했다. 2000여년 전에 흘리신 피가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죄를 씻는다는 초자연적인 믿음이다. 예수님의 피가 사람들에게 역사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가 되는 길은 회개(육적인 마음이 죽고)하고 예수 속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이 말은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의 피로 씻어준다』는 말만 하는 것이다. 
성찬식때 예수님의 피와 몸을 기념한다. 두 가지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만 역사하지는 않는다. 

애굽에서 히브리인들이 바로왕에 묶여 있었듯이, 바로왕으로 부터 나오려면 어린양의 피를 칠하라는 말씀이다. 피를 칠한 다음 죽은 고기의 양을 피를 칠한 집 안에서『먹고 있으라』는 말이다. 밖에 나가면 죽는다. 어린양의 피가 역사하는 곳은 피를 칠한 집 안이다. 어린양의 시체가 함께 있어야만 한다. 어린양의 피와 죽은 고기는 따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피와 죽으심이 함께 역사해야만 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되지 않으면 내 죄가 예수님의 피로 씻어졌다고 아무리 외쳐도 역사하지 않는 이유다. 예수님의 죽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하나가 되는 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이 땅에 가두었지만, 이 땅에서는 에덴동산을 두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한 천사들을 멸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첫 사람은 사단에 넘어지고 말았다. 첫 사람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이유는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 에덴동산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사단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자기 왕국을 세우고 싶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이 하고 싶었던 체험의 유혹이 파멸을 가져온 것이다.

인간의 체험이 맞는가 아닌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진리에 인간의 체험으로는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죄가 없었던 아담과 하와는『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는다. 그들은 죄를 짓기 전에는 에덴동산이 풍요로움과 천국이었다. 죄를 짓고 난 뒤에는 숲에서 숨어지내는 두려움의 장소가 된 것이다. 내 중심의 체험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영향력은 저주다. 아담이 죄를 짓자말자 하나님이 심지 않은 식물이 나왔다. 가시엉겅퀴다. 죄를 지은 후에 식물이 변형되어 버린 것이다. 한 식물에서 다른 식물이 변형되어 나왔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이유는 하나님없이 에덴동산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 범죄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이유는 자기 왕국을 세워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것이였다.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하와를 유혹한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벗어나 인간이 주인이 되는 것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하나가 되는 것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가 되기를 원하지만 사단은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21-22절『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가 되지 않는 것 중에 탐욕이 있다. 이성이 제어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죄의 모습이다. 모든 죄는 자기가 주인이 되고자 하므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으면 반드시 범죄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이다. 영이 죽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깃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왜 피값을 지불해야만 하는가? 이 세상은 흑암 속에서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1-2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그러나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그 곳에 인간을 만들어서 두었다. 세상과 에덴동산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다. 하나님이 세상의 권세를 사단에게 주었는데, 누가복음 4장 6절에서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이다.『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세상의 권세를 지고 있던 사단은 에덴동산에 있는 인간을 넘어뜨리려고 한 것이다. 결국 인간들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졌고, 인간들은 에덴동산으로부터 세상으로 쫒겨났다. 

세상 속으로 쫒겨난 인간은 사단의 지배하에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핏값을 지불하고 사단으로 부터 사야만 하는 이유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체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지만, 범죄한 후에는 체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체험이 믿음이 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체험을 죽이고,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게 주님과 하나가 되는 길이다. 믿음은 믿는 자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상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그래서 믿음을 선물이라고 한다. 내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는 회개가 나오고, 주님이 나를 바라볼 때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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