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4-22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성령의 능력으로 죽었던 영의 몸을 살리시는 것이다. 영이 살기 위해서는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한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다. 육의 몸은 옛사람(탐욕)으로 표현되며, 영의 몸은 그리스도의 옷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된다. 

육의 몸으로부터 육의 마음이 나타난다. 그래서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육체가 존재하므로 사탄이 육의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육의 마음에 넘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성령으로 인도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난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맏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육의 몸(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아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도 육체가 있으므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나타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하나님 나라를 기억하며, 과거 출애굽 당시 실패한 이스라엘과 같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거듭난 자는 성령께서 함께 간구하신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 연약한 육체가 있기 때문에 항상 악에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악에 넘어지는 것은 영의 몸이 아니라, 사탄이 육의 몸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육체 속의 죄성의 기억이 죄를 불러일으킨다. 사탄은 이것을 이용한다. 죄성(탐욕)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탄은 그 기억을 자극함으로 육의 마음을 계속 솟아오르게 만든다. 성령이 탄식하며 함께 간구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자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나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부를 수 있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너는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자다. 예수와 함께 죽는 자는 십자가에서 당한 예수님의 고통이 회개하는 자가 느끼는 고통과 같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상관이 있는 자는 혈통과 육이 아니라 영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이 없다. 그래서 영의 몸을 가진 자는 성령을 따라 산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다. 육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 적용되지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법이 적용된다. 율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율법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성령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자유함을 입는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율법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그들은 회개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와 함께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거듭났다고 믿는다. 거짓된 복음에서 벗어나야만 구원받는다. 거짓된 복음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속이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 진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예수를 생각하면서 돌이키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 그 핍박의 불시험 속에서 통과하는 자가 예수의 가족인 것이다. 불시험 속에서 지푸라기들은 다 불에 타버린다. 가짜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타버릴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보석으로 거듭나게 된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은 더 목격했고, 이를 증언하는데도 도마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도마는 예수의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도마는 자신의 육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람들이 부활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거듭난 자다. 왜냐하면 거듭난 자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도마와 같은 그런 믿음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돈과 명예와 권력인가, 아니면 예수인가? 예수님은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육은 언젠가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영의 몸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십자가는 육의 몸을 부인하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종교나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만, 십자가가 아니면 불에 타버리는 믿음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일 뿐이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이『인간의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씀했다. 인간 속에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그 탐욕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 탐욕이 죽고, 거짓없는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행을 행하고, 영성 수련을 하고, 노력하지만, 스스로 탐욕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오면, 물질 앞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당장 육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많이 기적을 행한 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문둥병자가 치료가 되고, 죽었던 자가 일어나고,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보았지만, 육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오면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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