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2장 1-9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인간의 말과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했다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증거인 십자가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오직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십자가를 부여잡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죽은 자가 되는 곳이며, 교회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십자가의 그리스도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는 자신의 설득력이나 지혜의 말로 전도하지 않았고, 오직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만을 바랐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믿음 또한 성령님이 행하신 능력의 결과라고 한 것이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는 성령께서 임하신다. 전도와 믿음의 주도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있다. 전도의 열매와 믿음은 성령님의 행하심의 결과다. 오로지 성령님의 행하심과 부르심 안에서 순종할 따름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그리스도(첫서럼 아담)와 함께 이 세상에 보내고 그리스도(마지막 아담)와 함께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한다는 계획인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힌 자는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다. 
왜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는가? 대부분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므로, 천지창조 후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고, 죄에 빠져, 악해져서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실 수 밖에 없는 상태가 오게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시고, 택한 자들만 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로 창세 전에 예정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을 잘 깨닫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다. 세상 사람들은 기준이 육체인데, 예수님은『육체는 무익하다』고 했다. 그 전제는 영이 다 죽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관심은 육체로 비롯된『나』라는 존재이다. 그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잘먹고 잘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육체 속의 영은 언제 죽었는가? 대부분 교회는 에덴동산에서『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먹는 순간 죽었다』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과 먹은 후의 영의 상태를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를 먹은 후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리 그리스도를 준비하셔야만 했는가? 그것은 그냥 대부분 교회에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은 언제 사람의 몸에 들어왔는가? 이에 대해서 세가지의 학설이 있다. 선재설, 유전설, 창조설이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창조설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날 때 마다 영을 창조하여 몸에 넣어주는데, 하나님이 깨끗한 영을 넣어 주었다면, 인간이 태어나자 마자 범죄한 존재가 되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러운 영을 넣어주었는가? 왜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교회가 믿고 있는가? 만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영이 다 죽었다면 사람이 태어날 때 마다 하나님은 죽은 영을 넣어주는가?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는 죄가 없었는데, 원죄설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이 넣어주신 영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더러운 영을 넣어주었거나 죽은 영을 넣어주었다고 생각하겠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설은 부모로부터 영이 생겨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죄있는 마리아로 부터 태어나신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도 없던 영이 생겨서 이 세상에 나오실 때 만들어 진 것이 된다. 말이 안되는 학설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창조설을 지지하면서 창조설에도 모순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선재설은 이단시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재설은 바로 창세 전부터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있었으며, 범죄하여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을 말한다. 

대부분 교회들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부터 죄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곳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시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모든 것이 뒤틀려 있다. 그런데 선재설은 가장 타당한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은 육체(흙)와 영혼이 존재한다. 영혼에 대해서는 이분설과 삼분설로 설명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흙과 영이 만나서 생명체가 되었는데, 이 생명체를(히브리어:네피시하야, 헬라어:푸시캐 우리 말:혼) 여러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영과 혼을 통틀어서 영혼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이다. 성경에서『영이 죽었다』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누가복음 8장 55절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예수님이 살리시는 장면이 나온다. 육체가 죽으므로 영이 떠나가고, 영이 돌아왔으므로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았다는 내용이다. 영과 육은 정반대적인 입장에 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육체로는 죽임을 당했지만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으니』라고 했다. 예수님도 살리심을 받기 전에는 영이 죽어있는 것이다. 몸 속에 있으면 죽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죽은 상태는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진 것이다. 예수님도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했다. 예수님이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해서 인간들과 같은 방법으로 영이 죽은 상태로 율법 아래에 태어나셨고,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주기도문에서『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말씀에서『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선을 이루어 보라고 했는데, 결국 그 뜻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 땅에서 있다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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