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에게는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한 소망이었다. 바울은 그 소망으로 인하여서 큰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과 겸손함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했다. 자기가 그처럼 희생적으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자는『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육신을 따라 안다는 것은 육신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에 거짓교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외모를 자랑하고 육신의 기준을 따라 판단했다. 그들은 멋진 웅변 솜씨와 유명인들로부터 받은 추천서,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배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외모를 가지고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했다. 육신을 따라 아는 지식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였다. 인간은 약함을 싫어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외모를 보고 육신을 따라 아는 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잘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심지어 신앙까지도 육신을 따라 판단한다.
육신을 따라 아는 사람들, 외모를 자랑하는 자들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일 수 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저주받은 모습으로 죽은 실패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다윗과 솔로몬처럼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온 세계를 그 앞에 굴복시키는 메시아였다. 그런데 메시아가 나타났는데 기대했던 위대함이라고 없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었다. 육신을 따라서 외모의 뛰어남을 기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이렇게 육신의 기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강권함을 받은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고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육신을 따라 아는 대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었는데, 오늘날은 모든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는다. 죽지않으면 여전히 내가 주인인 것이다.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않고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한다는 말인데, 자신을 위해 산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결과다.『다시 사신 분을 위하여』라는 말은『다시 사신 분을 향하여』라는 표현이다. 오늘날 교회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대부분 믿는다. 그러나 인본주의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어야 한다. 그게 회개요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이다. 회개하면 믿음이 오며, 믿으면 의롭다하심을 얻으며, 믿으면 성령을 받아 거룩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지식과 육체적 감정과 자기의지로 살아간다면 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지시하시고, 그것을 따라서 성령 만이 맺을 수 있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고백하고 반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있다.
죽는 자는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위해 사는 자는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이기는 자가 예수 안에 있는 자다. 사람들이 만든 편리한 교리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을 따르지 않으면 예수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래서『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갈라디아서에서는『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라고 말했다. 구원은 새로운 피조물, 다시 태어난 자 뿐이다. 옛것(old thing)이 지나갔다는 말이다.『지나갔다』는 말은『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의 그 말이다. 거듭남은 중간이 없다. 거듭남은 옛사람(old self)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듭났다고 말하면서도 옛사람을 붙잡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은 옛사람이 죽었을 때 등장한다. 구원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는 것이 회개다. 그래서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옛사람은 죽어야만 한다. 교회에서 많은 경우 옛사람은 죽지 않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기를 원한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 만이 구원받는다.
새사람이라는 말은『new create』라는 뜻이다. 새 창조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내가 주인이 되면 새창조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롯은 그 곳에서 수십년을 살았다. 천사가 그 곳을 나오게 하고 말하기를 『머물지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소알성으로 가라』고 말했다. 구원은 머물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 만이 머물지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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