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빌립보서 1장 7-11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다른 목회서신에서 사도 바울이 쓴 편지들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도된 나 바울은...』이라고 기록하여 자신에게 사도직분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밝히고 나서 문안과 권면으로 내용이 이어졌는데, 빌립보서 만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에 대하여 한번도 부정적이거나 불신하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6장 14-15절에서『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하나님께서 루디아라는 여인의 만남을 통하여 그 가정이 복음화 되게 하시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시어 빌립보 교회가 생겨났다. 그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사자로 인정했고 그의 지도를 받으며 순종하고 따랐던 교회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세웠지만 그 교회에서 얼마 동안 목회사역을 하다가 마게도냐로 떠날 때 이 교회에서 계속 적극적으로 기도로 뒷받침했고, 마게도냐에 가서 불모지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재정도 엄청나게 많이 지원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와 사도 바울의 관계는 바울이 함께 있거나 떠나 있거나 항상 한 가족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했다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실천하여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더욱 성숙해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해 가면서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 모든 성도들은 심령마다 성령을 받았다.
빌립보서 1장 6절에서『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성령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그들을 깨우치시고 인도하시고 붙들어 쓰심으로 나타나는 성과들이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바울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빌립보 교회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만큼 소망적이었기 때문이며 그 교회가 하는 역할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성과가 넘치는 교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도 계속해서 금식기도까지 했고,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전달된 선교헌금으로 전세계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중단이 없게 사역을 도와 왔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이것은 빌립보 교회야말로 가르친대로 믿고 자기가 보여준 모습들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세계선교를 위하여 시간과 기도와 물질, 이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빌립보 교회가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는 그 사랑의 모든 정성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사도 바울이 기대하는 것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닮아서 영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라는 것이다. 이 선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진실되고 허물없이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그 믿음으로 계속 이어져 성숙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빌립보 교회는 빌립보서 4장 15-20절에서 다음과 같은 칭찬을 듣는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한다. 하나님 아버지가『주 안에 있는 자들의 필요한 것들을 다 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다. 사도행전 1장 3절에서『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성경 말씀이 왜곡되지 않고, 영원히 변치않는 말씀이 심겨질 때 사람들을 거듭나고 변하게 된다. 이 땅에서는 무엇인가 소유하고, 이루는 것이 기록되거나 남게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것이 하나도 기록되거나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5장 3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영이 비워져야 천국이 임한다. 사람들의 영에 세상의 기준으로, 세상의 것으로 가득차 있다. 아무리 오래살고, 아무리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 나라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든든하게 여기는 것들은 죽음이 눈 앞에 올 때 주님의 나라에는 하나도 계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식을 많이 쌓은 것, 재물을 많이 모은 것들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 성도들은 죽을 때까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분명해진다. 지옥가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 외에는 사실 이 세상에서 열매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잃어버린 영혼은 구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다가 이 세상을 끝내면 주님이 무엇이라 말하실까? 우리의 시각을 교회 안에서 교회 밖으로 옮겨야 한다. 영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복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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