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요한복음12장37-40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사도바울이 말한 것을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기록한 내용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성령의 능력을 입게되면 저절로 회개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는데, 성령의 역사가 이사야서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이렇게 제목에서 보듯이 끝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간다는 말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런데도 28장에 와서는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이방인에게로 가노라』 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4장 1-10절까지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는 11절에서『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2절에서는『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네가지 밭에서 길가에 뿌린 씨는 하나님 말씀을 새가 쪼아먹는 것이고 그 새는 마귀이다. 성경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마귀의 방해 때문이다. 두번째는 돌짝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심었지만 그 흙속에 돌이 있는 것을 먼저 기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의 싹이 자랐지만 햇빛이 나면 말라버린다. 말씀으로 인한 핍박과 어려움이 올 때, 통과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세번째는 가시떨기 밭이다. 하나님 말씀이 심겨졌지만 가시떨기(탐심) 때문에 자라지 못한다는 말이다. 탐심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세가지 유형의 밭은 구원받지 못하는 밭이다. 마지막 밭은 좋은 밭이다. 인내로 결실하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이 심겨졌을 때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말이다. 삼십배 육십배 백배 결실하게 된다. 이 밭이 구원의 밭이다. 저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왜냐하면『저희가 듣고 돌이켜서 깨달아 돌이켜져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함이라』라고 했다. 회개하지 많은 채로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고 들으도 거듭나는 생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거듭나야 죄사함을 얻게된다. 회개해야지만 돌이켜서 죄사함을 얻게된다는 말이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회심)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죄사함이 먼저가 아니라는 말이다. 회개해야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이『회개하라』는 말이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회개가 전부이다. 회개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회개가 안되니까 끊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37-40절에서도『회개하지 않으면 이 믿음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회개해야 돌이킬 수 있는 것이다. 거듭나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오늘 날에는 교회에서『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습니다』라고 말하며, 세례를 베푼다.『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으므로 당신이 이를 믿는 다면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거듭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믿음은 지적 동의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3장 37-39절에서『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누가복음 22장 32-34절에서는『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성경구절이다. 베드로가 온갖 기적을 경험하여도 내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과 연합되기 전에는 신약시대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마지막 구약시대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삼년 동안 예수님의 살아계심과 연합되어도 변화되지 않는 베드로인 것이다. 돌이켜야만 거듭나고 죄사함을 받는다. 그런데,『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은『회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집과 직업을 버렸지만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회개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만 진정한 회개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연합되어야만 가능하다.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백이 아니라 십자가와 연합되어야 한다.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으면『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7장 19-20절에서『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여기서 말하는 열매가 바로 회개의 열매다. 그리고 이어서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좋은 열매는 선한 행위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는 열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 날에 좁은 문으로 서 있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좁은 길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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