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베드로전서 1장 6-13절)『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했다. 금이 정금 되는 것은 그냥 되어질 수 없다. 뜨거운 용광로를 거쳐서 불순물이 다 타 버리고 녹아 버린 다음에야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금이 나오는 것이다. 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 안으로 들어가려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욥기에 보면 욥이 사람으로는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고난을 당하면서 한 말이 있다. 욥기 23장 10절에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말씀하셨다.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약속하고 있다.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했다. 주님도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주님에게 영광이 찾아 왔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했다.고난 가운데서도 부활의 영광을 생각하며, 환난을 견디라는 것이다.『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거듭남과 부활은 같은 말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시고, 그 다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거듭남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몸의 상태다.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재적 부활이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로마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바다건너 멀리 터키지역까지 강제로 이주당해 낯선 땅에 원주민들 속에 갇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며 고난의 삶이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편지로 위로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잃지 않기를 원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거듭났으며 아울러 산 소망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옛적부터 선지자들이 줄곧 밝혔었고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고난 후에 받을 영광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여기서『바랄지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3절에 『소망』으로 번역된 헬라어의 동사형으로써『소망하다』의 의미다.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몇 가지 신앙적 실천사항을 말씀해주고 있다. 첫째,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것이다. 허리를 동이는 표현은 출애굽기에 나온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앞두고 애굽에 10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시고 유월절 어린 양 고기를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을 때에는 허리의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허리를 동이는 것은 긴박한 상황일 때 쓰는 표현이다. 육체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써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신하여 목표에 매진하라는 것인데 그것은 주님이 오실 날을 생각하며 영적으로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13절에서『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성경에『깨어있으라』는 말이 여러 군데 나온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깨어있으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가셨을 때도 제자들에게『너희가 잠시라도 깨어있어서 나와 함께 할 수 없었느냐』 라고 책망하셨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잠을 자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깨어있으라』는 말은 이면적인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고있다 해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잘 아는 상황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인정하는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이 깨어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있더라도,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면 깨어있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믿음이 필요하다. 로마서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장 3-6절과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을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3절에서도『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라고 했다. 밤에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다.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은 도적같이 오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신 것을 나중에 깨닫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