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회개

(야고보서 2장 1절)『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는 흩어져있던 열두지파의 히브리 백성들을 대상으로 했다. 1장 18절에는『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거듭난 자에게 쓴 편지다. 거듭난 자는 첫 열매라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고 한다. 

사도바울의 서신은 교회를 대상으로 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 생명과 관계되는 믿음이다.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야고보서나 사도바울이나 모두 회개하고 거듭난 자에게 하는 말씀이다. 구약에서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놋제단에서 어린양이 죽어야만 했다. 그 어린양이 바로 죄인들의 죽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게 되면 모든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회개하는 죄인에게로 옮겨온다는 것이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없는 믿음은 없으며, 회개는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는 자기부인의 길이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서『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회개하고 거듭난 자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받는 행함이다. 거듭난 자의 믿음은 옛사람의 옷을 벗은 자 뿐이다. 그래서 오직 자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얻는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행함의 열매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려고 노력할 뿐인 것이다. 야고보가 행위를 강조한 것은 거듭난 자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옛사람의 옷을 벗는 자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행위의 열매를 얻게된다. 로마서 4장 3-4절에서는『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이는 4장 19절의『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죽은 것 같음이 중요하다. 

왜 예수님은『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세례를『옛사람이 죽었다』고 표현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함이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게되었다. 그들로부터 이어져오는 사람들의 생명은 다 영이 죽은 육신이 된 것이다. 육신은 원죄라는 탐욕의 악이 오염되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의 육신은 참으로 부패하였기에(벧후 2:10, 렘17:9) 하나님은 육체가 된 사람 안에 거하지 않으신다 하셨고(창6:3), 관유를 사람의 몸에 붓지 말라고 하셨다.(출30:32) 그 육신 속에서는 영이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죄악으로 오염된 육신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육체를 덧입어야만 한다. 새로운 생명을 받아야만 영이 살아는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영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육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죄의 몸은 죽고, 다시 신령한 몸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게 거듭나는 것이다. 거듭나야 영이 살아날 수 있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성령으로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는『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그래서 로마서 6장 6절에서는『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세례는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는『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육체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사람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다. 새생명으로 부활시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미래에 육체가 죽을 때 새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부활하는 것이다. 부활에 대해서는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현재의 부활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다시 살 것을 믿는 마르다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형상은 이렇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야 회복된다. 죽었던 영이 살아난다. 영이 신령한 몸으로 덧입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은 회개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입은 자만 살아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회개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고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새생명으로 부활한 성도들 안에 역사하게 된다. 옛사람의 옷을 벗지도 않으면서『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한다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와 하나님께서 부활시킨 새생명이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면 넘어질 수 있다.『빛의 자녀답게 깨어있으라』고 말한다.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택한 자도 넘어지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끝날 때까지 싸워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 육체가 원하는 것을 버리는 삶,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만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사람은 비록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통해 이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의 죽음(세례)을 통해, 세상의 모든 죄로부터 예수의 피로 사해주신다. 그러므로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부활의 몸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부모로 부터 주신 생명을 비록 입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죄를 짓지 않는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자신이 예수믿는다고 말하면서, 매일 죄를 짓고 또 회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에 거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거하는지 잘 판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돌아가야만 살 수 있다. 이게 회개다. 회개는 세상죄를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생명의 옷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게 회개(repent)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