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

(베드로전서 1장 1-4절)『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는 로마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던 AD 65년을 전후로 하여 사도 베드로에 의해 쓰여진 서신이다. 이 편지는 소망의 서신 혹은 격려의 서신이라고 불려지는데, 베드로는 이 서신을 통하여 환난 중에 있는 성도로 하여금 곧 닥쳐올 큰 박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어떤 고난과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도록 권면하고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고난 속에서,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고난을 어떻게 이기고 감당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주는 소망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모두 각처에 흩어진 나그네들이다. 이 땅의 나그네라는 말이다. 나그네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런데 단순히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 흩어진 나그네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흩어 놓으실 때는 그 뜻이 있어서 흩으시는데,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흩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경륜과 계획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흩어진 나그네라고 한 것은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나그네가 원주민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믿는 자도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거듭남을 정신적인 작용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거룩한 상태로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줄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자기의 의만 쌓을 뿐이다.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부모로 받은 몸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히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 신령한 몸을 가리킨다. 거듭나는 것은 신령한 몸을 의미한다. 이 몸이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말하는 영의 몸이 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지 않으면 부활생명으로 살 수 없다. 부활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형상인『영』도 죽은채 그대로다.『혼』인 자기가 주인 노릇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장사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진리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십자가에서 먼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이『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으로부터 쫒겨난 후에는 땅에서 가시엉겅퀴가 나왔다. 세상과 에덴동산은 어떻게 다른가? 첫 인간 아담은 세상에서 창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에덴동산으로 넣어주셨다. 창세기 2장 7-8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동방의 에덴에서 하와가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에덴의 동산으로부터 쫏겨났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는『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세상은 그의 근원이 된 땅을 말하고, 에덴의 동산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다. 심지어는 옛뱀(사탄)도 등장한다. 옛뱀은 하나님 나라에서 광명성(헬라어로 루시퍼)이라고 부르던 천사장 중의 하나였지만, 이사야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였다. 그런 자가 왜 에덴 동산에 있는가? 에덴동산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은 돌이켜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으며, 하나님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애굽으로부터 나온 백성들에게『올라오면 다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먼저 계시된 것이『두려워하라』는 것이다.『하나님을 경외함』은 두려워함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부르신 곳 안에서만,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신 분임을 보여주신다. 방주 안에서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소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하나님은 두려우신 분이시다. 죄인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죽어야만 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옛사람의 옷을 벗는 자만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계시하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죄인이 피를 흘려야 죄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여전히 율법 안에서 그 분을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율법 안에서는 두려우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율법 조항 하나라도 어기면 심판을 받게 되는 두려우신 분이다. 구약시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성소에서는 짐승의 피가 흘려졌다. 신약시대는 어린양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피흘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계시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바울이 말하기를『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의가 나타나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죄인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만 죄인도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의에 이르러야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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