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사도행전 2장 22-35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다윗은 이미 죽어 그 육신은 땅의 일부가 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왜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시편 16편에 고백케 하셨는가를 생각했던 베드로는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한 것임을 깨닫게 되어 설명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이제 그 메시지는 예수님의 부활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이 증거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요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베드로는 수많은 무리 앞에서 설교의 결론을 맺는다.『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쓴 사람들을 주님은 기억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명령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는 사람들로, 초대교회를 탄생케 하는 자들로 사용해 주셨다. 그리고 이 날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이후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고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교제하고 기도하는 연합으로 맺혔고, 무엇보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열매로 드러났다.
에베소서 1장 22-23절에서『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다. 오늘날 교회는 충만한가? 교회가 이렇게 되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교회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면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께 복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것이다. 교회 건물 안에 있어도 허물과 죄로 죽어있으면 진노의 자녀로서 구원받지 못한다.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자신은 회개했다고 해도 자기 기준으로 회개한 것이다. 예수님은『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는데, 죄만 씻으려고 하고 있다. 죽어 있는 모습은 에베소서 2장 2절에서『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회개하지 않으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옛사람이 죽지 않았는데, 회개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인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다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가 된다. 회개하는 자는 허물과 죄로부터 벗어나는 자가 된다. 허물은 세상죄를 말하고 죄는 원죄를 말한다. 세상죄는 용서의 대상이지만 원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죽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다.
예수님이 주가 된다는 것은 거듭난 자를 말한다. 그래서 새사람을 입은 자에게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방언하고, 환상보고, 예언하고, 기적을 일으켜도 구원받지 못한다. 자기부인의 회개가 없다면 예수님이 주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이 오면, 내가 주인인지 예수님이 주인인지를 알 수 있다. 구원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그래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새사람으로 살려주신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만물 가운데 충만하지 못하는 이유가 구원을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말하지 않고, 죄 씻는 것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3장 3절에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도 않으면서, 믿기만 하면 칭의된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는 것이다. 율법에 갇힌 자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죄를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해서 결국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율법에 갇힌 자들은 죄에 대해서 죽지 않은 자들이다. 율법에 갇힌 자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리라』 라고 말했을 때 모두 다 버리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대로 다 도망 가 버렸다.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들은 이렇게 자기가 기준이 되어 어떤 상황이 오면 거듭나지 못한 제자들처럼 예수를 버릴지도 모른다. 오늘날 교회에 앉아 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를 다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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