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사도행전 5장 1-4절)『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사도행전 2-4장에서는 성령이 임하시니까 사람들이 자기 재산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자가 없었다고 했다. 당시 성도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아래 두었던 것은 팔아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자기 소유의 땅을 팔았지만 얼마를 감추었다고 했다. 자기 땅인데 왜 감추는가? 당시 핍박받았던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 소유를 다 내어놓기로 묵시적 동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회개하지 않으면 완전한 순종이 불가능하다. 아나니아를 통해서『자기』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는『불순종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면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난 자들이 성도라는 이름으로 만나서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육정으로 나지 않고 성령으로 난 자들의 모습이다.
아나니아는 신자였지만, 베드로는『사단이 충만하다』고 했다. 아나니아는 스스로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자기가 주인이었다. 이게 구원받지 못하는 자의 모습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주인이 예수가 되어야만 한다. 예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와야만 주인이 예수가 된다. 십자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자기』라는 존재가『악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만 회개가 가능하다. 성경은『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회개는 그리스도의 계시로 연결된다. 그리스도 계시는 십자가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계시가 주어진다.
아나니아가 예수를 믿지만, 아나니아에게는 예수가 없었다. 사단이 충만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예수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자기가 주인인『사단이 충만한 자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믿음이 아니라 회개한 자에게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예수의 믿음이 주어져야 구원받는다. 나의 믿음이 아니라『예수의 믿음』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회개는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전부를 주셨지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받기만 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주인인『사단이 충만한 사람』을 예수님은『너희 아비는 마귀니라』라고 하셨다. 많은 교회 안에서『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지만 하나님은『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회개한 자는 내 생명이 주님의 것이 된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가 된다. 그렇지 못한 자를 바리새인의 외식이라고 한다. 구원은 회개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회개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의 뜻은『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랑은 악으로부터 영을 구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과 로마서 12장 10절, 요한1서 4장 19절 에서 형제 사랑을 말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 라는 것이다.
성경에 대부분의 말씀은 재물에 대한 것을 바탕으로 언급하고 있다. 마술장이 시몬도 마술한 것 때문에 베드로가 시몬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고 권능을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시몬에게『너희 안에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러나『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 믿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믿는 것이다.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믿는 것이다. 구원도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으로 여긴다. 회개없는 믿음은 구원받지 못한다. 회개없이 믿는 자의 주인은 마귀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나니아의 마음 속에 마귀가 어떻게 역사하는지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결정은 마귀의 뜻대로 좇아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귀는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아나니아에게『너는 그 정도면 충분히 크리스찬이야 괜찮아』 라고 했을 것이다. 아나니아는 스스로도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 신도가 되어서 헌금도 좀 하고 그렇게 활동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네 마음 안에 사단이 가득하다』라고 성령이 말씀하셨다. 회개한 자에게만 예수님이 왕이시요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육체로 비롯된 혼적인『나』라는 것에 속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나의 혼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교회에서조차 분노가 일어나고 싫어지는 것이다.『혼적인 나』, 혼적인 모든 지식과 감정과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 죽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못한다. 비록 교회에서 눈물흘리고 기도하고 환상을 보고 기적을 체험해도, 회개하여 예수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여전히 혼적인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자기 부인』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혼적인 나』를 부인하는 것이다. 혼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죽어야만 한다. 오직 살리는 것은 영이다. 요한복음 6정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사랑의 진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사랑이 구원의 진리다.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 진노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진리이신 예수와 십자가에서 연합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적용된다. 아나니아는 즉시 쓰러져 죽었다. 성령이 역사하면 거듭난 자에게는 깨닫게 해 주시지만, 거듭나지 않으면 혼이 떠나 죽게도 하신다. 예수님이나 스테판 집사가 죽었을 때는 영이 떠났다고 기록했다. 아나니아는 영이 죽은 혼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모두 혼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육으로 비롯된 인간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혼이라는 말이다. 지식으로는 성경 공부하여 쌓고, 감정으로는 찬송부르면서 눈물흘리고, 의지는 교회 봉사 많이 하면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러나 이 지정의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회개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대로 산다면 혼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혼적인 존재는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받지 못하면 심판받아 지옥으로 갈 것이다. 혼의 지식, 혼의 감정, 혼의 의지는 구원받지 못한다. 오늘날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을 것이다. 영과 혼은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라고 말들을 한다. 그래서 혼도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영과 혼을 구분할 수 없으면 하나님 말씀과 이 세상을 겸하게 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므로 마치 영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영이 죽은 혼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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