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사도행전 28장 16-31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마를 향한 항해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지만, 항해를 마칠 때 바울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것은 바울이 고귀한 신분이나 지위에 속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바울의 신앙의 모습 때문이었다. 

누가는 바울이 경비병 한사람만 딸린 채 영외의 가택에 연금되는 관대한 조치를 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관례로 보면 바울은 먼저 황제근위대의 대장에게 인계되었을 것이고, 근위대장은 죄수인 바울을 황제의 시위대 감옥인 프레토리움에 감금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분리하여 프레토리움 밖에 있는 일반 가옥에 따로 있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으면서 군영 밖에 있는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은 매우 관대한 처우였다. 바울이 이렇게 선처를 받은 이유는 아마도 총독 베스도의 호의적인 조서와 더불어 바울을 호송한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 경험한 대로 작성한 보고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러한 생활이었을 지라도 죄수의 신분으로서의 생활은 매우 제한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바울은 군영주위에서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한 죄수와 간수를 언제나 하나로 묶어 두도록 규정된 로마법을 고려해 볼 때, 늘 간수의 통제 하에 모든 활동에 제한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하나님은 바울이 그가 그토록 가보기를 열망했던 로마로의 여정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게 하셨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말씀을 로마에 전하게 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담대히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본문에 쓰인『전파하고 가르쳤다』는 두 단어의 시제는 모두 현재분사로 진행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사도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이 기술한 것 까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디모데후서를 비롯한 그의 목회서신은 로마에서의 2년간 연금 생활에서 벗어나서 한차례 더 전도여정을 거친 후에 다시 투옥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끝이 났다고 해서 바울의 역사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문장에서 현재분사를 선택함으로써 사도행전의 기록은 끝이 나지만, 사도행전의 역사는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사도행전의 역사는 바울을 넘어 오늘 성도들에게까지 연장되고 연결되고 있다. 

바울은 두 가지를 전파했다.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대부분『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라고 전할 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하나님 나라와 죄인들의 회개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복음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복음은『예수믿으라』가 아니라,『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는 것이다. 복음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된다. 물론 성도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로 가겠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오직 함께한 자들 중 일부만 보여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화한 내용을 통해서 잘 이해할 수 있다. 니고데모는 당시 랍비(선생)였다. 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은『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적 몸(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의 몸(새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에 맞는 예복을 입으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옛 사람이 바로 사탄이 심어놓은 사탄의 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옛사람이 못박혀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탄이 심어놓은 옛사람은 인간 스스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사악한 죄악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을 제시하신다.『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창세 전에 미리 인간의 구원을 예정하셨는가? 그 이유는 사탄의 반역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유혹을 따르는 모든 자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방법은 오직 하나,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다시 신령한 몸으로 태어나 영의 몸을 입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것을 이루면, 하나님 나라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예수믿으세요』가 아니라, 사탄의 종노릇한 것을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 사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복음서에서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해야만 한다. 바울은 거듭난 자들의 교회에 주로 편지를 했다. 바울 서신은 복음서와 차이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처음 예수를 믿겠다고 나온 사람들에게 바울 서신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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