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베드로후서 3장 10-18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3장 10절『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후 우리노이)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파렐류손타이)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주의 날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도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주께서 성도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 날이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오신다. 왜냐하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거듭난 자에게 들어오는 순간, 새창조가 일어난다. 『후 우리노이』는 마음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파렐류손타이는 파라(옆에서) 류손타이(오다)의 합성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것이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번역했는데, 아마도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번역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는 것은 육적 몸(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장 11절『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함을 받는 그 간격 사이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베드로는 묻는다. 택함을 받은 자만이 거듭나서 성령 세례를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말씀의 은혜를 통해서 교회에 왔지만 거듭나지 못한 신자를 의미한다. 거듭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항상 이 부분에서 잘못을 저지런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위해 무엇인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영적 산제사로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우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노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하나님의 분노를 풀어드리는 것이다. 

 3장 12-13절『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하나님의 날은 성도의 심령 속에 주님이 찾아오는 그 날이다. 마찬가지로 하늘이 풀어지는 것은 잘못 번역된 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것이다.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나라가 임하여 새하늘과 새땅이 되는 것이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있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의는 언약(약속)과 관계가 있다. 새로운 언약은 예수의 살을 먹고(연합되어 죽고), 피를 마시는(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는)자가 언약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칭함을 받는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자는 비록 죄가 있더라도 하나님이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유로, 죄를 덮어주시고, 의로운 자라고 칭해주신다. 

 3장 14절『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열심히 노력해서 점도 없고 흠도 없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도가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날마다 죽는 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주를 위해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를 위해 사는 자는 오직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3장 16절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스트레블루신:왜곡하다)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은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참고 계신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를 계속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도 회개의 일종이겠지만,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옛사람)을 버리고, 새생명이 되어서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가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범죄한 천사들이 육체 속에 갇혀 영이 죽었지만,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영이 깨어나,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주된 주제는 탕자의 이야기다. 탕자는 자기의 몫을 받아서 하나님을 떠났지만, 자기의 의를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죽은 자같이 되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탕자의 잘못을 하나님이 스스로 채찍을 가하면서 같이 죽은 자가 되어,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다.

이 성경의 진리의 말씀이 왜곡되는 이유는 에덴동산을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의 어느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결국 새하늘과 새땅도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새하늘과 새땅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의 이야기 보다, 세상 속의 육신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게 보이는 것이다. 기복적인 신앙으로 흐르게 되는 이유다. 인본주의, 영지주의, 율법주의자들이 성경을 억지로(왜곡해서) 해석하고, 끼워맞추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외에 무엇인가를 더하게 만드는 것이 끼워맞추는 것이다. 인본주의 영지주의 율법주의의 핵심은 인간 중심 사상이다. 위의 세가지 사상의 중심에는 영지주의가 있다. 

모든 종교는 영지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다. 교회 안에서 퍼지고 있는 영지주의를 예로 든다면, 거룩하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 하나님과 직통 교류를 위해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는 것, 예수를 닮기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 죄를 용서받기 위해 회개문을 작성하여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 천국가기 위해 사람이 보기에 선한 일을 하는 것,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계명을 통해서 마음의 영성 훈련을 하는 것 등이다. 『~을 위해서』 라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에 들어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심령 속에 신성을 깨워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3장 17-18절『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거짓교사들)이 미혹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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