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사도행전 28장 16절『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로마를 향한 항해를 처음 시작할 때 바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죄수에 불과했지만, 항해를 마칠 때 바울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것은 바울이 고귀한 신분이나 지위에 속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위기와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바울의 신앙의 모습 때문이었다.
누가는 바울이 경비병 한사람만 딸린 채 영외의 가택에 연금되는 관대한 조치를 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관례로 보면 바울은 먼저 황제근위대의 대장에게 인계되었을 것이고, 근위대장은 죄수인 바울을 황제의 시위대 감옥인 프레토리움에 감금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분리하여 프레토리움 밖에 있는 일반 가옥에 따로 있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으면서 군영 밖에 있는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은 매우 관대한 처우였다. 바울이 이렇게 선처를 받은 이유는 아마도 총독 베스도의 호의적인 조서와 더불어 바울을 호송한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 경험한 대로 작성한 보고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러한 생활이었을 지라도 죄수의 신분으로서의 생활은 매우 제한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바울은 군영주위에서 일정한 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한 죄수와 간수를 언제나 하나로 묶어 두도록 규정된 로마법을 고려해 볼 때, 늘 간수의 통제 하에 모든 활동에 제한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28장 17-19절『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바울이 로마에 도착 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하나의 통합된 공동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보며, 따라서 바울이 초청한 이들은 개별적 공동체들의 장로, 지도자, 회당장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마카비 시대부터였고, 폼페이가 유대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후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오기도 했기 때문에 로마에는 제법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바울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의 숙소에 초청한 것은,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서 활동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고, 그들을 초청한 목적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을 변호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둘째는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바울은 자신을 보호학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로부터는 자기에 대해 어떤 소식을 전해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자신을 변호할 수 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바울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을 듣고 그것을 사실로 판단하여 황실에 뇌물을 주면서 부정적인 내용의 고소를 한다면 바울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28장 20-22절『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바울 자신로서는 개인의 일신상의 안전을 염려하는 것보다는 무엇보다도 복음을 중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전파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바울은 정중한 태도로 자신이 로마에 재판을 받기 위해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는 자기가 동족인 유대인을 거스리거나 유대의 관습을 반대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오해의 여지를 없게 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허위의 누명을 씌워 사형을 가하려 했으나 로마 군사들이 구해준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다만 무죄하게 로마인의 손에 넘겨졌다고만 진술함으로써 가능한 한 반유대 감정을 배제하고 있다.
28장 23절『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하나님은 바울이 그가 그토록 가보기를 열망했던 로마로의 여정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게 하셨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로마에서 전하게 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담대히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가르쳤다. 사도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이 기술한 것 까지가 아니었다. 디모데후서를 비롯한 그의 목회서신은 로마에서의 2년간 연금 생활에서 벗어나서 한차례 더 전도여정을 거친 후에 다시 투옥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끝이 났다고 해서 바울의 역사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사도행전의 역사는 바울을 넘어 오늘 성도들에게까지 연장되고 연결되고 있다.
바울은 두 가지를 전파했다.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대부분『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라고 전할 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28장 24-29절『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웃시야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 중, 남유다 왕국의 11번째 왕이다. 그는 16살이 되던 해인 주전 790년부터 739년까지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을 잘 믿는 왕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하게 만드셨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교만해졌다. 삶이 형통하면 형통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으면 좋았을텐데, 형통함에 도취되어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려다가 나병에 걸려서 죽고 말았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야했던 웃시야 왕이 죽은 그 해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사야 6장에서는『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은채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유대인들이 이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28장 30-31절『바울이 온 이태(디에티안:2년)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성경에서는 천국이라는 용어와 하나님 나라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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