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 16:1-23)
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케렘)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이샤이)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멜락)을 보았느니라(라아) 하시는지라
사울에게는 기름병을 가져다가 머리에 부었는데, 여기에는 뿔에 기름을 채워서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 케렘은 양의 뿔이다. 뿔은 왕권을 상징한다. 뿔을 사용하는 경우는 좋은 일을 암시하고, 기름병을 사용할 때는 나쁜 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사무엘 상은 사울과 다윗을 비교한다. 사울은 온전한 왕이 아니라는 것과 다윗이 하나님이 보기에 합당한 왕이라는 것이다.
뿔에 대한 찬양은 결국 다윗과 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무엘상 2장 10절『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마시아)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히브리어 마시아는 메시야를 의미한다.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심판과 구원을 나타낸다. 심판은 십자가의 죽음이지만, 구원은 부활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샤이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 라는 의미다. 이사야 11장 1절에서『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하는 귀절이다. 라아는 기본어근은 보다,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직접적으로나 함축적으로 자동사, 타동사 그리고 사역동사로 다양하게 적용됨)숙고하다, 나타나다, 증명되다, 확실히, 고려하다, 분별하다, 즐기다(-게 하다), 경험하다, 주시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멜렉은 왕인데, 사울은 나기드(지도자, 방백)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무엘상 9장 16절에서『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나기드)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사울은 진정한 왕이 아니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지도자였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왕인 것이다. 그래서 다윗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
2-3.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은 사울과 적재적인 관계로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방법을 알려주신다. 이게 하나님과의 대화인 것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대화하고 좋은 방법을 알려주시는 분이기도 한 것이다.
사울이 지도자가 될 때는 사무엘이 재량권을 갖고 사울에게 방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세세하게 사무엘에게 방법을 알려주신다.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다윗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사무엘이 다윗을 찾아가서 왕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을 찾아오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시고 모세에게도 찾아오셨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도 찾아오시고 오늘날 성도에게도 찾아오신다.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울에게는 백성들을 위해 기름을 부었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기름을 부으신다. 탕자의 비유에서 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찾아와 하나님 백성 삼으신 것은 아버지이신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다.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그래서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4-5.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성읍의 장로들이 사무엘을 보자 두려워 떨었다. 혹시 잘못한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좋은 일로 왔다는 말이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머물고 제사를 함께 지냈다. 이는 은밀하게, 사울이 눈치채지 못도록 한 것이다.
6-7.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아인)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레바브)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엘리압은 사울처럼 키가 크고 잘 생긴 용모였으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엘리압은 택함을 받지 않았다. 이는 사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울을 이미 버렸는데, 또 사울같은 자를 택하려고 하느냐 라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외모보다 마음의 중심에 맞는 자를 택하겠다는 말씀이다.
“사람은 외모(아인)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레바브)을 보느니라” 아인은 눈이다. 야인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레바브는 마음이다. 영적인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보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눈은 영안이 열린 자를 의미한다. 사람의 눈으로는 자기가 중심이지만, 영의 눈으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가 중심이 되는 자는 율법적인 인간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는 자는 복음의 눈이 된다.
8-10.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다윗을 제외한 모든 아들들 일곱을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없다고 말을 한다. 이새는 자기 생각에 그의 아들들 일곱 중에 왕이 될 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11-12.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카탄)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카탄은 가장 작은 자를 의미한다. 사울은 큰 자로 소개되었지만, 다윗은 작은 자로 소개된다. 이새의 눈으로 볼 때, 다윗은 어리고 사무엘 앞에 올 자격조차 없는 자로 여긴 것이다. 양을 친다는 것(목동)은 천한 직업 중의 하나였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는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본질은 마음의 중심인데, 우연히도 다윗의 외모는 좋았다고 한다.
13.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챠라흐)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상 10장 10절에서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챠라흐)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사무엘에게 기름부을 때,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했다고 한다. 챠라흐는 몰아가다, 앞으로 나아가다 발전하다 라는 말이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선지자들과 같이 예언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예언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블레셋을 공격하지 않고 길갈로 가지 않고, 피해서 고향으로 가버린 것이다.
이 날 이후로(욤 후 마알)에서 마알은 오르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욤 후 마알은 “이 날에 그 이상으로” 라는 의미가 된다.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더 위로 더 높게 몰아간다는 말이다. 이 날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이 아니라, 계속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14-16.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바아트)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루아흐 라)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다윗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것과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나는 것이 연결된다. 바아트는 정신적인 고통을 의미한다. 욥기에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자로 등장한다.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의 허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적으로 사울은 폐위된 것이고 다윗이 왕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호와께서 부리는 영은 천사이다. 천사는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사탄이 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는 돕는 천사가 되는 것이다. 악령으로 번역된 “루아흐 라”에서 루아흐는 영이며, 라(7451)는 고통을 주는 괴로운 등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히브리어 단어(레아:7453) 라는 이웃, 형제라는 의미를 갖는다. 숫자는 스트롱 코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만, 말씀 속에 있으면 평강이 있는 것이다. 사울이 고통을 받고 있는 중에 수금타는 자로 다윗이 등장하는 것이다.
17-18.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라아)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소년 중 한 사람(이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라아는 숙고하다, 증명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자로 소개된다. 소년 중 한사람으로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이쉬(남자)로 되어 있다. 창세기 2장에서 이쉬는 첫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윗 후손 역시 마지막 아담으로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메시야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22.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은 자인데, 드디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육적인 눈으로는 아직 왕의 자리에 앉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다.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의 딸 미갈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무기를 드는 자는 사울로부터 가장 신임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결국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전에 사울의 밑에 있게 한 것은 왕으로서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공부시키는 것이다. 결국 다윗은 사울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쫒겨나게 되고 그를 피하여 도망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훈련이 되는 것이다.
23.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루아흐 엘로힘)이 사울에게 이를 때(하야 하야)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루아흐 엘로힘은 하나님의 영이다. 하야 하야는 하나님의 이름(여호와)과도 관계된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이름이다. 즉 악한 영이라고 번역한 루아흐 엘로힘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영이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여호와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축복이나 재앙도 여호와부터 임하신다는 말이다.
신명기 13장 2-3절에서『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아모스 3장 6-7절『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한글 개역개정에서는 악령이 마치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모든 영은 하나님께서 부리는 천사에 불과한 것이다.
천사가 악한 역할을 하면 사탄이 되는 것이다. 이사야 45장 7절에서『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어둠은 심판과 관계된다. 하나님이 어둠이나 환란을 창조하신 이유는 인간들에게 너희들은 다 이와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사탄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원론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원론인 것이다.
열왕기상 22장 22-23절『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사무엘하 24장 1절에서『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역대상 21장 1절에서『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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