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구약인용)
마태복음 26장 31-32절『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스가랴 13장 7-9절『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나님이 목자를 친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이민족을 통해서 치므로, 성전은 불타고 백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끌려가는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목자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와 우상에 빠진 인간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그래서 제자들도 뿔뿔히 흩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짐하고 심지어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예수님의 예언처럼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번 부인했다. 하나님이 목자를 치면 양들은 도망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모인 제자들은 열두 제자 외에 오백여명의 제자가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 이 같은 적은 수의 제자들만 승천을 목격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당시에는 그보다 더 많은 수가 예수의 표적을 통해서 예수를 따랐던 것이다.
스가랴서를 보면, 하나님이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작은 자는 당시 이방 나라로 끌려가 흩어진 백성들 중에 고토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는 자들을 의미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핵심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이었다. 예수님은 이들을 작은 자, 남은 자로 여기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작은 자는 삼분의 일로 표현된다. 성전을 재건하려는 자들은 반대에 부딪히고 어려움에 직면했다. 성전 재건을 방해하던 자들은 이방민족이 아니라,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었다. 에스라 4장 16절에서『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사마리아인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앗시리아의 정복 당시 혼혈 정책으로 인해서 태어난 자들이었으므로, 이방인 취급을 받은 것이다. 이들이 주로 성전 재건을 방해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당시에 작은 자들은 제자들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성전의 무너짐을 의미한다. 이 성전의 무너짐을 다시 재건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부활생명을 통해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을 세우는 일인 것이다.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들도 나처럼 죽으라는 말로 들이지만, 그렇지 않고, 육적 몸을 십자가에 죽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와 연합되어 죽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불 가운데 연단받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육적 자아의 죽음은 곧 옛사람의 죽음이고, 새사람의 등장은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한다. 옛사람(옛성전)이 죽어야만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22-24절『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새사람은 새성전으로 비유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심령에 성전을 주셨는데, 죄로 인해서 성전이 폐허가 되고, 우상 신전이 되어버렸으며, 결국 성전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데, 육신의 몸으로 세운 성전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세우는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다.
새성전은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주신다. 그래서 성도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성령의 전이 된다고 말을 한다. 성령의 전은 바로 성부 하나님의 전이 되고, 그리스도의 전이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도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임재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다른 말로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부활생명을 받은 자만이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부활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여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에 앞서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세례를 주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세례를 주는 교회 공동체가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도행전 19장 1-5절에서『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여기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성령세례를 의미한다.
사도행전 8장 16-17절『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여기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는 물세례인 것이다.
정리를 하면 세례요한이 준 물세례는 죄를 씻는 의식으로서 물세례였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모르는 채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모두 죄에 대해서 죽는 물세례이다. 성령세례의 의미를 알고 받는 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성령세례인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이 세례의식은 성령세례가 아니라 물세례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령세례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물세례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는 것이고, 성령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성도 역시 부활생명을 받은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부활생명을 받은 자가 새성전을 재건하는 자인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말씀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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