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25의 게시물 표시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사도행전 14장 8-10절『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에쿠신) 바울이 주목하여(아테니아스) 구원 받을 만한 믿음(피스틴 투 소데나이)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에쿠센( ἤκουσεν) 은 아오리스트 시제다. 그(앉은뱅이)가 복음을 들을 때 호 로고스의 말씀이 들려진 것이다. 아테니아스도 아오리스트 시제다. 피스틴 투 소데나이는 순간적으로 구원되어지는 것의 믿음이다. 즉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앉은뱅이의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믿음을 주신 것이다. 구원의 주체(하나님)가 주시는 믿음과 객체(앉은뱅이)가 믿는 믿음과 연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대므로 병이 나아졌는데,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한다. 병자는 죄인을 의미한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라는 의미는 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아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희생제사가 필요했다. 죄인은 희생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죄인이 그 희생제물에 안수하고, 죄를 전가시킨다. 대속의 제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제물을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살을 번제단에서 태운다.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도 마찬가지로 죄인의 한 모습이다. 그런데, 혈루병 여인이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므로,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이 나간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이라는 말은 죄를 전가시키는 능력이시다. 그 여인의 죄가 예수님에게로 전가되고, 그 여인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한다. 그녀의 믿음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영적으로는 죄에 ...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사도행전 14장 2-7절『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에카코산)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에피 토 퀴리오) 담대히 말하니(팔레시아조메노이)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에피 토 로곤)을 증언하시니(마르투룬티)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쉬니돈테스) 도망하여(카테퓌곤)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에피 토 퀴리오 (ἐπὶ τῷ κυρίῳ) 는 주님 위에서라는 것이다. 팔레시아조메노이 (παρρησιαζόμενοι) 는 파라(많은)와 시아메노이(말하다)의 합성어로 호 로고스로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즉 주님 위에서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에피 토 로곤 (ἐπὶ τῷ λόγῳ) 은 은혜의 말씀(호 로고스) 위에서 라는 것이다. 마르튀룬티는 증언하다라는 의미다. 즉 호 로고스 위에서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증언을 한 것이다. 쉬니돈테스와 카테퓌곤이라는 동사도 아오리스트 시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유대인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두 사도를 따랐다고 한다. 어떤 마음이 믿음의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가?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악 감정을 가지게 했다. 엑카코산은 악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마음은 어떤 말을 듣는 순간, 그 말에 동화되고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두 사도가 보여주는 표적과 기사를 보고, 은혜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앞에서 앞의 동화된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이방인 모두의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일부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유대인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두 사도를 따르게 된 것이다. 마음이 바뀌지 않은 자들은 율법...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사도행전 14장 1절『이에( Ἐγένετο: 에게네토)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에이셀데인 εἰσελθεῖν ) 말하니(랄레사이 λαλῆσαι )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한글 개역개정의 번역이 정확하지 않다. 헬라어(그리스)로 다시 보면, Ἐγένετο δὲ   ἐν Ἰκονίῳ κατὰ τὸ αὐτὸ εἰσελθεῖν αὐτοὺς   εἰς   τὴν συναγωγὴν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λαλῆσαι οὕτως   ὥστε πιστεῦσαι Ἰουδαίων τε καὶ   Ἑλλήνων πολὺ πλῆθος. 에게네토는 ~되다, 일어나다, 행하다, 이루어지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에게네토 데 엔 이고니온”( Ἐγένετο δὲ   ἐν Ἰκονίῳ )은 이고니온 안에서 이루어졌다 는 것이다. 무엇이 이루어졌는가는 그 다음 문장에서 카타 투 아우토( κατὰ   τὸ   αὐτὸ )인데, “그와 같이 이루어진 것을 따라” 이다. “그와 같이 이루어진 것을 따라”는 사도행전 13장 49-52절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에우스케모나스)과 그 시내 유력자들(프로토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더 이상 비시디아 안디옥에 머물 수 없었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했다고 한다. 에우스케모나스는 귀족의 지위에 있는 자를 의미하고, 프로토스는 첫째의 서열에 있는 자들이다. 유대인들이 종교심이 있는 귀족 여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선동하여 그 도시로부터 나가게 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과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장 46-48절『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바울의 설교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복음에 감격한 사람들로 인해 다음 안식일이 되자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에 감동을 받은 이방인들은 영생을 얻었으나,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쫒어내므로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더 이상 비시디아 안디옥에 머물 수 없었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기도 하며,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더욱 강한 박해를 가해도 그로 인해 복음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말로 하는 방해를 넘어 신체에 까지 가해지는 고난과 박해가 찾아와도 바울과 바나바는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모든 상황이 다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울일행은 동남쪽으로 약 125km떨어진 이고니온으로 갔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테타그메노이  τεταγμένοι :기본형은 탓소) 자는 다 믿더라』테타그메노이는 정돈하다, 임명하다, 명하다, 결정하다, 정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도행전 22장 10절에서『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하나님이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의 눈을 뜨게하고 세례를 주는데, 하나님이 미리 사도바울 택하여 복음을 이방인에게 ...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사도행전 13장 32-35절『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호시아 다위드 타 피스타)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주의 약속은 아들을 통한 부활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시편 2편 7-8편의 말씀과 시편 89편 1-5절, 시편 16편 10절의 말씀과 연결된다. 시편 2편 7-8절『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하나님은 다윗이 이방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내세우신다. 하나님께서 시온산에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을 다스릴 왕으로 임명한다. 그런데 세상의 왕들이 모여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하기 위하여 모여서 반역을 모의한다. 세상 왕들은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상징한다. 제사장 무리와 서기관들이 앞장 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지만,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세상 사람들과 왕들의 어리석은 도전에 하나님께서 분노를 나타내시며, 엄위하신 명령을 내린다. 당장에 무릎을 꿇고, 내가 세운 왕에게 입 맞추고 엎드리는 자들은 용서와 은혜를 베풀겠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은 질그릇을 깨뜨리듯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편 89편 1-5절『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