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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106-107

제 106문 : 이 계명은 오직 살인만을 언급하는 것인가? 답 : 살인을 금지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살인의 근원 곧 시기, 증오, 분노, 앙심 등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살인에 해당한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런데, 율법주의로 빠지면 글자 조문에 얽매여 무거운 짐을 지는 자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으며, 심지어 그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죽여버렸다. 율법주의는 살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예수님을 살해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율법주의는 만연하다. 날마다 십계명의 조문을 살펴보고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죄를 지을 경우 예수의 피로 용서받으려 하는 것이다. 이 또한 예수님을 두번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 한번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 더 이상 피를 흘릴 수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제 107문 :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말인가? 답 :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우정으로 대하며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심지어 원수들에게까지 선을 베풀라고 가르쳐 주신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영이 죽어있다. 그래서 탐욕이라는 우상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오직 탐욕이라는 우상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만, 이 탐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로마서 4장 9-10절『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헤 피스티스 ἡ πίστις )이 의(디카이오쉬넨 δικαιοσύνην )로 여겨졌다(엘로기스데 ἐλογίσθη )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엘로기스데( ἐλογίσθη) 는 아오리스트 시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다고 평가되는 것이 순간 성령세례를 통해 일어난 것이다. 바울은 모형론적 성경해석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모형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사는 것처럼, 아브라함도 씨의 언약인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직 믿음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나 무할례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셨다. 아브라함이 99세의 나이에 할례를 받고 13세된 이스마엘과 집안의 모든 종들에게 할례를 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침 것이라고 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할례를 일종의 증표로 설명한다. 어떤 일을 했을 때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믿음 때문이지 할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믿는 자의 사람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흘러가는 것이다. 할례의 의식과 세례의 의식은 상징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흘러가는 것을 믿는 의식인 것이다. 할례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사람에게 주는 증표라면 물세례 역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증표이다. 그러므로 성령세례와 연결되어야만 이 증표가 효력이 있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에게 증표로서 세례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4장 13-14절『아브라함이나 그 후...

문답 105

  제 105문 : 제 6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답 : 내 이웃을 생각이나 말이나 외모나 몸짓으로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는 실제 행동으로 얕잡아보거나 모욕하거나 증오하거나 죽이지 않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일에도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복수에 불타는 모든 마음을 끊어버려야 한다. 또한 내 자신을 해롭게 하거나 성급하게 위기에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무기를 갖추고 있는 까닭의 하나는 바로 살인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피흘림에 대한 말씀이다.   피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이다.   피는 아무 곳에서나 흘려져서는 안된다.   레위기에서도 피흘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최초의 살인 범죄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며,   아무도 생명을 함부러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생명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   모든 생명은 한정된 생명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찾아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씨의 약속이다.   씨는 생명의 근원이다.   약속의 씨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된다.   약속의 씨는 그리스도(메시야)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살인에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탐욕이 숨어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두고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다. 가인이 가지고 온 것은 땅의 소산이었다. 땅은 토지이다. 아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다마(토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땅의 소산은 아다마의 소산이다. 즉 사람의 근본된 토지를 갈아서 생산해 낸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로마서 4장 4-5절『일하는(에르가조메노 ἐργαζομένῳ ) 자에게는 그 삯(미스도스 μισθὸς )이 은혜로(카타 카린 κατὰ χάριν )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오페일레마 ὀφείλημα )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토 메 에르가조메노 μὴ   ἐργαζομένῳ   ) 경건하지 아니한 자(톤 아세베 τὸν ἀσεβῆ )를 의롭다(디카이오쉬넨 δικαιοσύνην ) 하시는 이를 믿는(피스튜온티 πιστεύοντι )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사역하는 그에게는 그 품삯이 은혜를 따라 여기지 않고 빚을 따라 여겨진다. 사역하는 그는 자기의 의를 따라 행하는 자를 의미하며, 자기의 의를 따라 행하는 의는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빚으로 남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의는 누구에게도 빚으로 남지 않는다. 로마서 4장 5절을 헬라어로 보면 『토 데 메 에르가조메노 피스튜온티 데 에피 톤 디키이운타 톤 아세베 로기제타이 헤 피스티스 아우투 에이스 디카이오쉬넨으로서』그런데, 사역하지 않는 그에게 경건하지 않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그 분 위에서 믿는 그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성령을 받는 순간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의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옛사람인 것이다. 의롭게 하는 그 분 위에서(에피 톤 디카이운타 ἐπὶ τὸν δικαιοῦντα )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이라는 것이다.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이 소유한 믿음이다. 그 분 위에서 믿는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문답 103-104

  제 103문 : 제 4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답 : 첫째, 복음전파와 복음에 관한 교육이 계속되어야 하며 특별히 주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성례에 참여하고 공적인 기도를 드리며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바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에 정규적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둘째, 주님께서 내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심으로써 나는 힘겨운 일상생활의 악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생에서 이미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안식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래서 너희들이 안식이 되라는 것이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켜 행하다가 도무지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안식이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라는 말이다. 그래서 장차 오실 약속의 씨를 바라보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안식에 들어간 자가 된다. 안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쉬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세기 1장 1절에『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나라는 안식 그 자체다. 성경(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자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나님 스스로가 안식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안식을『쉰다』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는 또 일해야 하는 날이 오지만, 하나님 나라 안식에 들어가면 일하고 쉬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