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계시록 7장 5-10절「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요한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은 숫자가 아니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성전(성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성소 진영은 열두 지파로, 열두 지파가 성소를 받드는 것이다. 이들은 하늘의 군사들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군대라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에 해당되는 성도는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 영적 전쟁에 나가는 자들인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넷슬 알란드 성경을 따라 번역되여 일만 이천으로 되어 있으나, 스테파누스 성경은 봉인된 자가 수천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먼저 유대인을 부르셨다. 로마서 1장 16절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인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군대이고, 그 다음에는 나팔이 등장한다.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 되는 자들만이 진노의 날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은혜의 날이 된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이방인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자들이 이방인에서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구원받는 자들은 십사만 사천이라는 군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군대를 상징한다. 그래서 열두 지파를 통해서 이 땅의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에 이르런 것이다.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나오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군대가 이루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할 때까지 이 세상에 오는 진노의 큰 날을 네 천사가 막고 있는 것이다.


흰옷은 제사장의 옷을 의미한다. 셀수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런데, 수많은 제사장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흰색은 정결, 승리를 표현한다. 정결한 말씀을 입은 의인(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종려나무(타마르) 가지(포이니케스 φοίνικες)를 들었다. 타마르의 어근은 다말이다. 시편 92편 12절에서 『의인은 종려나무(타마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사사기 4장 4-5절에서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종려나무 아래서 재판을 했다고 한다. 드보라가 다바르에서 나온 것이다. 다바르는 진리의 말씀의 의미를 갖는데, 똑바로 세우다 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유대인들이 종려나무를 흔들었다. 종려나무는 잘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난다. 남은 자의 구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종려나무는 수전절에 사용되었다. 마카비 왕조가 세워진 왕조를 기념하는 것이다. 성전에 돼지 피를 섞어 오염시킨 셀류쿠스 왕조(안티오쿠스 4세)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성전을 회복시킨 것이다. 장막절과 개념이 유사하다. 그래서 장막절에 종려나무를 사용한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요한이 로마 황제를 반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시편 3장 8절에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지면 새성전이 세워진다. 옛언약(율법)은 지나가고, 새언약(복음)이 되는 것이다. 옛언약에 집착하면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구원은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이다. 노아의 홍수에서 8명만 구원받았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는 극소수의 남은 자만 살아남았다. 이사야 10장 21-23절에서『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로마서 9장 27절에서『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로마서 11장 5절에서『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모든 사람이 멸망당해야 하는데, 남은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라는 성도이다.


마태복음 24장 15-16절에서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기독교인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피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20-22절에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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