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탕자의 비유

 

1. 성경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구원을 나타내는 것이 부족하다

(2) 탕자의 비유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의 아들이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로 부터 재산을 상속받아 나가서 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날린 둘째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이 재산을 다 날린 다음에 다른 나라의 돼지를 키우는 곳에서 쥐염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았다. 그때 기억난 것이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품꾼들은 이 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한 것을 기억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더니 아버지는 혼내지도 않고 뛰어가서 입을 맞추고 안아주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좋은 신발을 신기게 하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탕자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죄인이 되어 세상의 물질세상에 갇혀있다가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범죄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았지만, 죄를 범하므로, 세상이라는 옥에 갇혀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회개케 하러 오셨다.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하신 이유는 탕자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자기의 의를 나타낸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여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탕자와 같이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이들은 큰 아들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예수님 당시 큰 아들의 모습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람들 중에 신앙생활에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가 주인인 사람이 바로 큰 아들과 같은 사람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다.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의 마지막 비유였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탕자와 같은 그런 모습이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갈수록 악한 모습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을 한다. 사람의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여, 하나님의 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육신적 자아가 죽어야만 한다는 의미의 회개가 있는 자를 찾기가 쉽지않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는 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탕자의 비유는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 32절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에서, 죽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자(십자가의 죽음)가 살아 돌아오는 자(부활한 자)를 사랑한다는 말씀이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오는 자는 하늘의 부활생명을 가진 거듭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죽는다는 말은 자기라는 육적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것으로 태어남을 깨닫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말씀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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