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요한계시록 22 16-21절「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뿌리는 선조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다윗의 선조이면서 자손(약속의 씨)이라는 말씀이다. 다윗의 선조는 하나님이시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약속의 씨)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므로, 다윗은 그리스도를 주라고 표현한 것이다.

마태복음 22 41-45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하나님은 다윗에게 마음에 드는 자라고 칭찬하신바 있다. 같은 제사장의 모델이 다윗이라는 말이다. 다윗은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자였다. 성도가 바로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광명한 새벽 별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22 16절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빛이라는 말씀이다.

요한일서 1 5절에서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2장에서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준다고 했다. 성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가 되어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부의 말이 하나가 되는(호모로기오) 것이다. 사탄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이다. 에르쿠(ρχου 2인칭) "오라" 라는 말인데, 2인칭인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말하는 것이다.

뒷부분의 오라(ρχσθω에르케스도:3인칭 복수) 예수님과 함께 있는 성령과 예수님의 신부(성도) 신도들에게 예수님께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도 신부가 되라는 것이다.

"목마른 자도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에르코마이는 종말 때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으로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도 그리스도에게로 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예배의 전형적인 귀절이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통해서 신도들에게 안에 거하라고 하시고, 그러면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성령이 들어온다고 말을 한다. 신도가 예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신도들에게 들어오시는 것이 바로 재림인 것이다. 

이 당시에 성경은 필사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펜으로 적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했다. 제대로 필사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고의적으로 필사자들이 원본을 변경하기도 한 것이다. 필사자들이 자기 생각을 넣어서 추가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자기 생각과 성경 원본이 맞지 않으므로 빼거나 넣거나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 것이 그 배경이다. 

요한1 5 6절에서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한15 7-8절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역개정에는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킹제임스 번역은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스테파누스 성경(5 7) οτι τρεις εισιν οι μαρτυρουντες εν τω ουρανω ο πατηρ ο λογος και το αγιον πνευμα και ουτοι οι τρεις εν εισιν

그런데, 넷슬 알란드 성경은 τι τρεῖς εσιν ο μαρτυροντες, (τ Πνεμα κα τ δωρ κα τ αμα, κα ο τρεῖς εἰς τ ν εσιν.)

괄호로 되어 있는 부분(하늘 아버지, 말씀이신 그리스도, 성령이시니 이 셋은 하나라)이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없다. 스테파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이다. 그러나 넷슬 알란드 성경을 번역한 것의 모체가 NIV이며, 한글 개역개정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가? 스테파누스의 원조는 에라스무스이다.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헬라어 성경의 원본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나타난다. 전체의 문맥을 통해서 깨달을 뿐이다. 

에르코마이 타퀴는 신속히 오고 있다는 현재시제 중수디포테를 취하고 있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님이 오셨고 현재도 오며, 미래도 급히 오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주님의 임재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멘 하고 주를 영접하는 자가 은혜가 되는 것이다. 주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들이다.

아멘(μν)은 굳건히, 확실한, 신실한, 진리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강조의 의미이다. 예수님은 아멘(진실로), 아멘(진실로)을 두번이나 말했다.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언약의 이행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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