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요한계시록 16장 17-21절「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일곱째 천사는 완전한 복음(일곱)을 전하는 메신저이다.『되었다 하시니(기노마이)』와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다 이루었다(텔로)는 말이 같은 의미를 갖는다. 언약의 완성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호 로고스로 받아들여지면 구원이지만, 레마로 받아들여지면 심판이 되는 것이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바벨론은 바로 계시록 16장 14절에서 왕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한다. 가짜 하르마겟돈이다. 니므롯이 지은 도시가 바벨론이다. 창세기 11장 1절에서『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종교적인 믿음이 하나였다는 것이다. 언어가 분리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에서 다른 신으로 대체되는 모습이 바로 바벨탑이며, 바벨론인 것이다. 



11장 2절에서『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그들은 욕단의 후예이고, 동방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과 말어지는 것이다. 11장 4절에서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거짓 영들이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가짜 하르마겟돈으로 모이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큰 성 바벨론을 언급하는 것이다. 바벨탑은 벽돌로 되어 있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지만, 벽돌은 돌의 짝퉁이다. 탑은 신과 만나는 신전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브라함이었다. 바벨탑을 대체하는 성을 예비했다. 히브리서 11장 8-10절에서『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바벨탑을 대체하는 새로운 성이며, 하르마겟돈이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이 말은 창세기 11장 9절에서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다. 



성전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해체를 의미한다. 큰 성은 예루살렘 성이다.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서『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큰 성 바벨론은 왕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왕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들인 것이다. 바벨론은 가짜 하르마겟돈(사탄의 회당)으로서 그 특징은 자기 이름을 내려고 모여든 곳이다. 거짓 입술을 가지고 가짜 종교에 뭉쳐서 비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흩어버리고 참 하르마겟돈으로 그의 백성을 모으는 것이다. 가짜 흐르마겟돈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무너지고, 새 예루살렘 성전인 성도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계시록 6장 14절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산이 옮겨지는 것은 마태복음 21장 21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예루살렘 성전은 산에 있는데, 산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심판의 구체적인 내용이 16장 21절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심판의 모습이다. 한 달란트의 우박은 60kg정도 되는 것이다. 비라는 상징어는 진리의 말씀이 비같이 내린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우박이 된다. 같은 말씀이라도 은혜인가 아니면 심판인가 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지 않으면 환란의 심판이 된다. 



성전에서 한 달란트로 만든 기물은 등잔대이다. 대접 심판은 성전의 등잔대와 관련이 있다. 등잔대는 일곱으로 되어있는데, 그게 마지막 대접이고 쏟아지는 장면이다. 그러면 상전은 어두워지고 더 이상 봉사할 수 어뵤는 상태가 된다. 옛성전은 종말을 고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큰 성에 모여있는 여러 왕들에게 한 달란트로 만든 마지막 등잔대를 부수는 (옛성전을 끝내시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박의 재앙은 출애굽기에서 애굽의 재앙이 떠오른다. 재앙(πληγῆς)은 구약성경에서는 야차르(흙으로 빚는 것)로 되어 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야차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흙으로 빚는 것은 영을 흙속에 가두는 개념이다. 그래서 재앙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흙에 가두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그리고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드는데, 그 과정이 흙의 입장에서는 불에 굽히는 과정이 있게 된다.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옛사람이 죽고, 새성전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불세례를 통해서 이전의 흙은 죽고, 새로운 도자기로 탄생하는 모습이다. 



이전의 영이 갇힌 흙으로부터 나온 육의 몸은 죽고, 하늘(성령)로부터 오는 새로운 영의 몸을 입게 된다. 그래서 부활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재앙은 다시 태어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궁극적으로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이런 과정을 구원으로 받아드리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오히려 재앙으로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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