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요한계시록 22 1-4절「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생명수 강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했다. 창세기 2장 에서 강의 근원은 에덴이라고 말을 한다.

에스겔 47 5절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을 건너게 하시니 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을 건너게 하시니 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을 건너게 하시니 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니와 큰 강을 이루었다. 에덴도 성전의 개념이다. 성전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22장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를 다시 언급하신다. 먼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영적 하나님 나라와  땅에 살면서 심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동시에 적용된다. 

여기는 바다가 아니라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라는 것이다. 바다는 궁창 아래의 물로서 율법을 상징하면, 생명수의 강은 궁창 위의 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을 의미한다. 생명수의 강의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마치 율법 속에 복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달마다 열매를 맺으므로 항상 계속 먹으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으라는 것이다.  말씀이 상한 심령을 치유케  것이다.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들은 항상 생명 나무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만국을 치료한다는 말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성도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어나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4 13-1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 37-38절에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명절 끝날은 초막절(수장절)이다. 초막절은 마지막 절기이다. 생명수의 강이 초막절에 생긴다. 성전이 완성되는 말이다. 이는 성령이 연관된다. 성령으로 성도의 심령 안에서 장막을 치시는 것이다. 성도의 장막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역사하시는 것이다. 

" 가운데(엔 메소 테스 플라테이아스ν μσῳ τς πλατεας) 흐르더라" 메소는 가운데가 아니라, 넓다는 의미다. 에덴에서 강이 네 사방으로 흐른다. 보좌의 생명수도 넓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다. 넓다는 말은 온세상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에 생명수가 들어오면 복음 전파를 통해서 다른 곳으로 흐르게 된다. 

"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엔튜덴 카이 에케이덴 엑큐론 조에스ντεθεν καὶ ἐκεθεν ξλον ζως) 생명나무가 좌우에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한그루가 있다. 엑큐론(나무)은 문법적으로 단수이다. 좌나 우는 헬라어로 엔튜덴으로 사용하고 있다. 생명 나무가 강 안에 있다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신부가 남편인 그리스도를 만나면 아들을 낳는 것이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열매를 맺고" 열두가지 열매를 맺으며, 달마다 열매를 넘겨주었다. "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만국의 치료를 목적으로 그 나무의 잎사귀도 넘겨주었다." 라는 것이다. 잎사귀는 이방인을 치유하는 약재를 의미한다. 탕자를 아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재 번역해 보면  "그강에 넓은 중앙에 그 안() 그곳에 생명나무 하나가 있는데, 열두가지 열매를 맺으며, 달마다 열매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만국의 치료를 목적으로 그 나무의 잎사귀도 넘겨주었다." 라는 것이다. 열매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들을 낳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까지는 저주(카타데마:κατθεμα)였는데, 이제 저주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것이 저주 상태인 것이다. 카타(~아래)와 데마(진열하다, 나타내다)의 결합어이다. 저주는 ~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저주를 통해서 하나님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 3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린도후서 4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로마서 8 24절에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죄를 깨닫고 돌이킬 때 다시는 저주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 나라가 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가운데에 있으리니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의 종들(δολοι듈로이:기본형은 듈로스)에서 듈로스는 묶다 라는 의미다. 주인(하나님)과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라트류수신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의미한다. 디아코니아는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제사장은 십사만사천의 기도하는 자들이며, 그들에게는 다시는 저주가 없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바드(경작하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아바드가 예배와 관련된다. 하나님과 묶인 자는 예배하는 자인 것이다.

"그의 얼굴을  터이요" 창세기 32 30절에서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의 이마에 사탄의 (육육육)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이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 것이다.  이름은 주님시요 말씀이시다. 이마에 이름이 있는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를 주로 여기고, 그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종은 그리스도와 묶이는 자인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새것과 옛것의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