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장 5-12절「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어둠이 아니라 빛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 빛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와서 그 빛으로 부활한 자에게 세상의 왕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둠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죽어서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부활한 자) 왕노릇 하는 것이다. 종은 하나님께 대하여, 왕노릇은 세상에 대해서 한다는 것이다. 만일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런 일이 없는 것이다.
말씀들은 믿음과 진리의 존재들이다. 그래서 아들(종)이 된 자들을 의미한다. 톤 프뉴마톤 톤 프로페톤은 그 선지자들의 영들(복수)이다. 프뉴마톤은 복수이므로 각각의 영들이다. 그러나 단수로 사용되었다면 성령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말의 번역은 단수로 영으로 표현되었으나 번역의 오류다.
타퀴(ταχύ)는 급하게 라는 의미다. 에르코마이(ἔρχομαι)는 현재시제 중수디포테로서 지금 오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님의 재림인가 아니면 심령 속에서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것인가? 재림이라면 세상의 종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말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테론(τηρῶν)도 현재시제이다. 두루마리(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급히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지키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고, 그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지키는 것은 보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말씀 속의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진리에 있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비진리의 교회에서 진리를 보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종들도 이미 천사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신도들이 교역자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토 데오 프로스퀴네손τῷ θεῷ προσκύνησον) 이 말은 하나님 안에서 경배하라는 의미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되어, 하나님 안에서 경배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밖에서 두려워 떨며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니엘 12장 4절에서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러나 요한은 인봉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대해서 인봉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리를 설교 하지 않고, 신도들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봉하지 말라는 말은 정확히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때가 가까우니라" 이는 십자가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로 인하여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과 심판으로 나뉘어진다.
십자가 사건 이후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구원받는 대상과 구원받지 못하는 자는 그들의 방향대로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부류의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여기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는가의 여부이다. 그들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가의 여부이다. 그렇지 못하면 예수믿는다고 말을 하여도 그들의 종교심에 의해서 믿는 자들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심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는 능동태이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는 수동태이다. 마찬가지로 거룩도 수동태이다. 자기라는 옛사람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이 의롭게, 거룩하게 만들어주신다는 말이다.
에르코마이 타퀴(ἔρχομαι ταχύ)는 속히 온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예수님의 재림인가 아니면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시는 임재인가? 이 말은 재림에 대한 말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문법적으로 현재시제 중수디포테이다.
예수님이 급히 오는 것과 미래 상이 있다는 말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를 영접하고 주의 말씀대로 살아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상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 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선교하고, 헌금 잘 하면 하나님이 미래에 죽어서 부활할 때 상을 준다는 말을 대부분 하고 있다. 이신칭의로 구원을 얻었지만, 상급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상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 이런 말을 한다.
에르곤(ἔργον)은 사역을 의미한다. 아포두나이(ἀποδοῦναι)는 수식하는 부정사 이다. 즉 그가 행한대로 갚아주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미래). 그가 행하는 일은 요한복음 6장 28-29절에서 의미를 말한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믿음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자기의 믿음으로는 율법에 놓여있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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