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유다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우리말 번역에는 『사랑을 얻고』로 표현되어 있으나, 하나님 아버지안에서 죽임을 당하신 이다. 영어성경 kjv 에서도『them that are sanctified by God the Father』,『사랑을 얻고』가 아니라 『be sanctified』이다. 『죽음을 당하신』으로 번역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리고 테테레 메노이스는 『의하여』 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키심을 받는 자가 된다.
유다서 1장 2-3절『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가 구원의 일반적인 내용을 전하려고 하다가 어떤 문제로 인하여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으로 힘써 싸울 것을 권면하는 편지를 씨게 된 것이다. 단번에 주신 믿음에서 믿음은 헬라어 피스테이 (πίστει.)이다. 피스테이(πίστει.)는 어떤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에 믿음이 자리잡는 그 믿음을 의미한다. 유다서의 가장 핵심은 바로 이 믿음을 의미한다.
유다서 1장 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가만히 들어온 사람이란,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는 선지자들이 경고한 대로 이와 같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로 되어 있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다. 경건하지 않는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경건하지 않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데스포텐(δεσπότην)은 절대 통치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만 절대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절대 통치자라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말로만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는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주여 주여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유다서 1장 5절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구약의 하나님께서 내린 심판 세 가지를 설명하면서 거짓교사들의 비참한 최후를 예언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첫째는 출애굽한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려진 심판이다. 영지주의로 미혹한 거짓교사가 출애굽하고 가나안 땅 앞에서,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부인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거부한 자들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다.
구약성경은 신약의 그림자다. 애굽을 나올 때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내용은 두절 밖에 안되는데, 어린양의 고기에 대해서는 열절이나 된다. 날로 먹어서는 안되고 물에 삶아먹어서도 안된다. 구워서 먹어야 되며, 나머지는 불로 태워 없애야 한다. 죽임당한 어린양은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다.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죽어야 어린양의 피를 칠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만 역사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예수의 피로만 죄를 용서받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완전하지 못하다. 예수님의 피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죽은 어린양(예수)의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만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적용될 때는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다. 가나안은 그리스도의 예표다. 애굽은 세상을 예표하는 것이다. 구원은 애굽을 나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에스겔서 20장 38절에서『너희 가운데에서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머물러 살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그 머물러 살던 땅(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구원의 기회일 뿐이다. 반역하는 자와 범죄하는 자는 이스라엘 땅(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3장 16-19절에서 인용된다.『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유다서 1장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아르켄은 아르콘(통치자)의 동사형으로 통치를 받는 것이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통치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들(영지주의 자들)에 대한 심판이 마치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영지주의 자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던 천사들도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의라는 것이다. 자기의 의는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세워 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영지주의자들을 악한 천사들과 같이 심판하시겠다고 했다.
인간은 영과 흙이 만나서 살아있는 생명체인 육적인 존재를 말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우리말 생령은 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살아있는 생명체(niv), 살아있는 혼(kjv)』으로 번역되었다.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서 자기 처소는 하나님의 집이다. 영이 들어간 집을 장막이라고 표현한다. 영이 들어간 하나님 나라의 처소를 이 땅에서는 장막이라는 표현을 했다.
영이 이 세상(육체)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로 부터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인간은 영이 하나님 나라의 처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와서 흙집에서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분배해주시면서, 너희들은 나그네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땅을 팔지 말하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나그네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너희들은 하나님 나라를 떠나 죄인이 되어 이곳에 머무는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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