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민수기 9장 15-23절「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성막을 세운(쿰)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에듀트)의 성막을 덮었고” 쿰은 일어나다 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달리다 쿰(아이야 일어나라)이라고 말을 했다. 쿰은 단순히 성막을 세운다는 의미보다, 성막에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수동형으로 “성막이 세워진” 이라고 번역할 것이다. 사람을 통해서 성막이 새워졌을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성막이 된다. 


 


증거의 성막(미쉬칸 에듀트)에서 미쉬칸은 거주하다, 에듀트는 증거 등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언약궤가 있는 성막(지성소)를 의미한다. 오웰은 덮개, 장막이다. 미쉬칸 오웰은 증거궤를 덮는 천막과 같은 것인데, 이것을 개역개정에서는 성막이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마치 미쉬칸 에듀트와 미쉬칸 오웰을 같은 의미로 번역한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성막이 세워진 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 지붕을 덮었고” 이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성령을 상징)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구름은 성막이 세워진 날에 구름이 덮혔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낮에 구름이 성막을 덮헜다는 표현은 없다. 따라서 성막이 새워진 날에만 구름이 덮혔다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며” 


 


“항상(타미드)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타미드는 펴다, 계속성을 의미한다. 항상이라는 말로 번역하므로, 낮에는 구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타미드는 성소가 세워질 때 구름이 덮힌다는 것이다. 구름이 덮혀서 지속적으로 그 상태가 유지되다가 낮에도 구름이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낮에는 구름이 덮혔고”의 히브리어는 타미드 카사이다. 카사는 덮다 가리다 라는 의미다. 낮이라는 단어는 없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다시 번역하면, “구름이 성막으로 부터 위에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을 때는 구름이 덮혔더라” 그러므로 낮에도 구름이 없을 때는 행진을 하는 것이다. 


 


낮에 구름이 덮혀있을 때와 없는 때의 차이는 구름이 덮혀 있는 것은 성소가 세워진 때이고, 구름이 없는 것은 성소가 접혀져 있는 것이다. 성소가 세워져 있을 때는 백성들이 움직이지 않고, 성소가 접혔을 때, 백성이 움직이는 것이다. 성소가 세워져 있으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성소가 접혀있으면, 백성이 일한다. 하나님의 일은 백성을 보호하시고, 먹이시는 일이다. 백성의 일은 하나님이 들어가라는 가나안으로 향하여 행군하는 일이다.  


 


우리의 심령 속의 성전에서도, 성도가 자기의 일을 하면, 성소가 접혀있듯이 하나님은 일을 하지 않으신다. 자기의 일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은 성도를 보호하시고, 영적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페)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페)을 따라 진을 쳤으며” 페는 입, 명령, 마음 등으로 사용된다. 여호와의 명령은 신호로 주어진 것이다. 바로 구름이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자가 하나님의 입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되는 것이다. 임재를 깨닫지 못하면, 율법주의로서 문자나 명령으로 민감하게 된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아락크 아난 알 미쉬칸וּבְהַאֲרִ֧יךְ הֶֽעָנָ֛ן עַל־הַמִּשְׁכָּ֖ן) 이를 번역하면,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고 길게 뻗어 있을 때, 라는 말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여러 날들을 여행하지 않았다. 이때 하나님의 싸인은 구름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전인적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미스파르)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미스파르는 길게 뻗어 있는 것과 반대로 작을 때 라는 말이다. 성령이 임할 때도 있지만, 세상의 일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자를 의미한다.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라일) 낮(요맘)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저녁부터 아침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간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깨어날 무렵에 성령의 은혜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구름이 밤에 있다가 떠오르면 행진하고, 낮에 있다가 떠오르면 행진하는 것이다. 낮에도 깨어있지 못하면, 성령 충만해지지 않는다. 


 


“이틀(요마임)이든지 한 달(호데쉬)이든지 일 년(야밈)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요마임은 덮다의 욤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문자적으로는 이틀이지만, 상징적으로 제한된 시간이다. 호데쉬는 새것이 되다 다시 세우다 라는 하다쉬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야밈은 영원토록, 영원한 등의 의미가 있다. 성도의 심령에 세워진 하나님의 임재가 많은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졌거나,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거나, 또는 새롭게 변화된 거듭난 자에게 임하는 임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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