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2)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영적 의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하면, 픽 웃으면서 거부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으로 부터 간섭받기 싫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세상의 종교나 미신적인 신 정도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신들린 자로 생각할지 모른다. 과거에 무당이 우리나라에 많았다. 무당을 신들린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신이 지시하는대로 행동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하는 등의 사람이다.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또는 죽음을 앞두고 의지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처럼 하나님에게 종속되기는 싫고, 종교는 가지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종교인 것이다. 이것을 우상이라고 하는데,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성행하는 것으로, 사람의 형상이나 동물의 모양을 만들어서 신을 부르고 원하는 것을 주문하는 식이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불교가 성행했다. 불교는 자기를 비우는 종교라고 한다. 육적인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온갖 마음을 비우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깨달음의 정점인 부처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부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수행을 하면, 언젠가 부처의 경지에 도달된다는 것이 주요 원리이다. 수행은 계율을 지키거나, 참선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원리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자기를 비우는 것은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지만,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자기를 비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는데, 그 죽음이 예수의 죽음 뿐만 아니라, 신도들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육적인 것의 죽음을 의미한다. 즉 육적인 것이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원리이다. 이것이 세례로 표현된다.
세례는 물에 잠기는 침례를 의미하는데, 육의 몸이 물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부활한 존재를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잘못 믿고 있는 것은 부활을 마치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교리의 잘못된 것이나, 잘못된 성경 번역 때문이겠지만, 이러한 오류가 기독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기독교의 원리는 탐욕으로 부패한 육적인 것을 버리고(십자가에서 죽고) 새로운 존재(부활)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매개체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며, 그와 연합된 것을 신도들이 믿는 것이다. 신도들도 그와 함께 죽었고,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신도가 예수와 연합되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원리이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큰 그림이 있다. 먼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표현을 천지창조라는 큰 그림으로 보여주신다. 그 다음에는 흙으로 빚어서 입김을 불어넣은 첫사람으로 보여주신다. 세번째로는 첫사람 아담을 분리시켜 남자와 여자로 만든 것을 통해서 아들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첫번째가 천지창조라는 표현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이 말을통해서 사람들은 우주창조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창조의 배경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을 작은 우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철학적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 신플라톤 주의에서 인간이 우주 중심에 있다고 보았다. 과학적으로도 인간은 생명체로서 우주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히브리어를 보면 천지에 해당하는 말이 “에트 하샤마임 웨에트 하에레츠” 이다. 천지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한자어로서, 우리 말로는 하늘과 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신도들은 이를 두고 우주창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하샤마임은 공중의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천국)인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도 heavens라고 번역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중심 사상이지만, 천국은 성도의 마음 속의 하나님 나라로서, 성도 중심 사상이다. 이 단어가 복수형을 띠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땅은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창세기 1장 1절은 우주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육체를 만드시고, 그 육체에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심은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창조를 하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 1-2절의 의미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을 가두기 위한 감옥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벌어진 악한 천사들의 영을 어두운 구덩이 가둔 것을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표현하는데, 그것의 결과가 바로 창세기 1장 1-2절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첫 육체의 창조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첫 육체가 어두운 구덩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천지라고 표현된 피조물에 대한 영적 상태를 살펴보면, 창세기 1장 2절「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히브리어 성경의 번역에 빠져 있는 부분이 있어서 다시 번역을 해 보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땅이 심연의 얼굴 위에 흑암 공허 혼돈으로 존재했고, 하나님의 영은 그 물의 얼굴 위에 운행하시니라』
얼굴이 창세기 1장 2절 앞부분의 번역에서 빠져 있다. 심연의 얼굴 은 깊은 물의 얼굴로서,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연의 얼굴은 영이 물질(육체)에 갇혀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 물의 얼굴은 흐르는 물의 얼굴이다. 생명이 있는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살아있는 영에 역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1장 2절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땅과 하나님의 영을 대조하고, 혼돈 공허 흑암을 운행하고 있는 것과 심연의 얼굴 즉 그 물의 얼굴 위에 운행하는 것으로 대조를 하는 것이다.
왜 인간이 이렇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육적으로는 죄와 같은 어두움을 표현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벌어진 악한 천사들의 영을 어두운 구덩이에 가둔 것를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사람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그는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으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고,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난 것이다.
우주라는 천지창조, 아니 첫사람의 창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는 육으로는 죽어야 할 몸을 가지고 태어나셨고, 마지막 아담인 예수가 대속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두번째의 모습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 모양으로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흙은 어두움, 죄를 상징한다. 욥기 4장 18-19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흙으로 된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천사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는 장차 부활생명을 받아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가질 것이라는 암시의 표현이기도 하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이)이 되니라” 네페쉬 하이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입김(성령)을 받고, 부활생명을 받아야 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말을 했는데, 유대인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0장 34-3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는데,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는게 무슨 잘못인가 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신적인 존재로 표현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는 그리스도로 표현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김으로 불어넣어 주셔야만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성령을 불어 넣어주셨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세번째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잠들게하고, 남자와 여자로 분리시켰다. 물론 표현은 아담의 갈비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표현하지만, 상징적인 표현이다.
아담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하와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먼저 하나님께 범죄했고, 아담이 하와가 주는 악의 열매를 받아 먹었다. 이 말은 범죄한 천사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범죄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물질세계인 옥으로 쫒아버렸는데,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첫사람으로 태어나고, 자신의 몸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죄인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만 전체적인 내용이 풀려갈 수 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옥에 가두었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 아들이었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한다는 계획이다. 성경에서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이다. 악한 천사의 영이 육과 결합되므로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는 방법은 죄의 몸을 벗고 의의 몸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 의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천지창조로 번역된 이야기부터 첫사람 아담이 창조되고,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지고, 범죄하여 에덴동산으로 부터 쫒겨난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과 그를 옥에 가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의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자신들이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나올 때의 반응이다. 성경에 유다서 1장 6절과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대해서 이와 연관된 내용이 언급되지만,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읽어본 사람은 성경에는 다양하게 그리고 폭넓게 이야기가 여기 저기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도 직설법은 아니지만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게 표현된다. 특히 예수님이 사두개인과 부활에 대해서 대화할 때, 하늘의 천사와 같은 의미로 설명을 한 바가 있었는데, 나는 이 부분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였는데, 범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을 하니 그가 갑자기 웃었다. 천사라니요? 라고 강하게 반발했는데, 그때 이후로 성경에서 등장하는 천사나 사탄과 같은 악역을 하는 자들까지 깊은 연구를 한 바가 있었다. 천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개념을 넘어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적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제외하면, 모두가 천사인 셈이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용어로 표현된다. 어쩌면 일곱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일곱 귀신도 자신의 내면의 영적 세계에서 특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곱이라는 말은 완전히 귀신들린 자라는 말인데,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쫒겨 난다는 이야기이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모든 인간들이 다 귀신들린 자라는 의미로 받아드린다면, 육체 속의 영은 어두운 영에 의해 지배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갇혀 있다는 말은 결국 영이 옥에 갇혀있는 말이 되는 것이다.
신도들이 예배한다는 목적으로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 그리고 항상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데, 한국의 개신교는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을 빼버렸다. 넣었다가 빼기를 다섯번 했다는 말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 그들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3장 19절의 의미만 잘 이해했어도 그런 위험한 일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들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이렇게 신앙고백서도 마음대로 고치는 것이 인간사이다. 그런데, 하늘의 악한 천사가 인간이 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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