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덴동산과 성전에서의 법정 모형
(2) 에덴동산과 성전에서의 법정 모형
성경에서는 범죄한 천사에 대해서 유다서 1장 6절과, 배드로후서 2장 4절에 설명이 나온다. 유다서는 자기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를 큰 날의 심판까지 흑암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베드로후서는 범죄한 천사를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가두었다고 한다.
에덴동산에서는, 사탄이 죄와 관련된 악한 천사의 마음에 있는 탐욕을 밝혀서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규정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쫒아내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성전은 죄로 규정하는 대속물을 정하고, 그 대속물을 통하여 죄인이 마음 속에 가진 회개하는 마음을 밝혀 죄를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려주시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하나님, 사탄(뱀), 아담과 하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그 열매가 등장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는 선의 나무와 열매가 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악의 나무와 열매가 된다. 하와는 범죄한 천사를 상징한다. 뱀이 하와에게 접근한 것은 그녀를 넘어지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즉 범죄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와가 뱀이 말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악의 열매를 먹은 것이다. 뱀이 하와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창세기 3장 3-4절『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무트) 죽지(무트) 아니하리라(로)』
단어가 반복될 경우 히브리어는 대개 강조형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번역을 결코 라는 부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무트는 동사이다. “무트 무트 로”는 문법대로 번역하면, 죽고 죽고 아니함이다. 즉 죽고 죽지 아니한다는 말씀이다. 반드시 죽는다라고 말을 받아드리면, 하와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육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로 받아드릴 수 있다. 죽고 죽지 않는다 라고 받아드리면, 육은 죽지만 영은 죽지 않는다 라는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3장 5절“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은 뱀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하와의 탐욕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표현이다. “하와 너는 이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 처럼 될 수 있어”라는 표현이다. 사탄은 악한 천사들이 이미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탄으로 하여금 악한 천사들의 탐욕의 마음을 이끌어 내어 죄를 규정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내용이 열왕기상 22장 22절에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거짓말하는(세케르) 영(루아흐)은 분명 사탄이다. 세케르는 속이다, 허위로 말하다 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승인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아합에 대해 재난을 선포하신 것이다. 경고란 그 엄중함과 함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미가야의 재난 선포 역시 아합으로 하여금 결정을 돌이킬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미혹하는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이 적용된다. 하와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는 행동이전에 탐욕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해 주신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와의 탐욕스러운 마음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하와는 악의 과실을 먹은 것이다. 그것은 개개의 천사들의 마음에 있는 악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집단적인 악한 천사들의 능력을 나타낸다.
3장 6절『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남편인 아담은 왜 그 과실을 아무 생각없이 먹었는가?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그를 떠난 천사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악한 천사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난 자들이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도 악의 열매를 먹은 것은 하와와는 달리 죄의 몸을 입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은 없지만, 죄의 몸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으로부터 나가게 한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를 벗어나 물질로 된 세상으로 나오게 하신 것이다. 에덴은 의미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성전을 나타낸다.
성전은 하나님 나라에서 쫒겨난 죄인들이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려는 모습을 나타낸다. 성전 안에서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으며,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는 은혜의 시은좌가 있고, 두 천사가 있으며,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는 제의를 한다.
세상은 완전한 재판이 이루어지기 전의 잠깐 머무는 유치장과 같은 모습이다. 사탄이 지휘하는 형사와 같은 어두은 영들이 범죄한 인간들 속에 있는 영들의 죄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기소를 하게되는데, 기소가 되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다.
성전의 지성소는 성막의 가장 내밀하고, 신성한 공간으로 하나님께서 재판장으로서 임재하심과 이 공간은 백성을 변호하는 대제사장 만이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이 지성소의 거룩함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성전은 재판정과 같은 모습이다. 재판관이신 하나님, 죄인의 변호를 맡은 예수 그리스도, 두 증인의 역할을 하는 천사와 성령, 그리고 나머지 한 천사(사탄)가 고소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정에서 심문을 하고 변론을 하고 증인의 이야기를 듣고, 재판관이 판결하는 것이다. 죄가 면제가 되면, 죄인은 자유인이 되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죄가 면제가 되지 않으면 음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며, 죄를 사하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에게도 이와 같은 권세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는 두 증인의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죄인에게 복음을 전하므로서, 죄로부터 벗어나 의로운 자가 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개념도 없이, 교회공동체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 지도자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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