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죄에 대한 관점
(2) 죄에 대한 관점
하이델베르그 교리 제 7문 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답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하여 타락함으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교리는 죄를 인간의 부패한 본성으로 바라본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되고 이런 본성으로 태어나므로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어떤 행동 이전에 타락하게 만드는 요인을 죄로 규정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간음죄라고 했다. 이것은 탐심의 한 유형으로 성경에서는 탐심을 우상이라고 까지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탐심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다음 세대에 전해진 죄의 유전설로 연결해서 교리 속의 탐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의 선재설을 근거로 보면, 탐심은 유전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죄악으로 인해, 그 죄와 탐심이 심어진 것이다. 대를 이어서 유전된 것은 죄의 몸이 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이것을 끊기 위해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함을 표현하고 있다. 교리에 의한 죄의 유전설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식의 결여로 나타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하이델베르그 교리 제 9문 에 의하면,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을 규정하신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답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이 악마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무분별하게 불순종함으로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그 능력을 잃게 된 것이다.”
죄를 불순종으로 말하므로, 죄의 속성으로 부패된 마음이 불순종으로 발전하고, 결국 율법을 어기어 죄를 짓게 된다는 논리이다.
웨스트민스트 대요리 문답91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답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그의 계시된 의지에 순종함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그는 죄의 속성이 유전되어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웨스트민스트 교리는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죄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죄가 유전되어서 전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날 때부터 죄인되었으므로 불순종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교리는 하니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들의 불순종을 율법과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율법의 613가지를 범하는 것을 도덕적 관점의 불순종보다 더 엄중하게 여긴다. 또 어떤 죄는 다른 죄보다 더 악하다거나 더 강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세가지로 설명된다.
먼저, 탐심이라는 우상이다. 이 탐심은 태어날 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든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탐심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죄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영의 선재설에 근거하여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육적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복음이 전세계로 거의 대부분 전파되었다고 생각되지만, 과거에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로마서 2장 14-15절에서 이 죄에 대해서, 양심에 따라 판단하신다고 말한다.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다음은 예수를 믿지 않는 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는데,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율법으로 예수믿지 않는 자를 대한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 4절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말하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불순종을 죄로 규정한다.
세번째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6장 7-11절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신 바 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이제까지 세상이 가지고 있던 개념들을 바로잡아 새롭게 증거하신다는 말씀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죄인들)가 나(예수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유대인들이 말하는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회개하는 자의 세상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목회자들 중에서 어떤 분은 죄의 규정이 율법의 불순종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런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것이 있다. 기독교인이 된 신자들에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이다. 십계명을 지켜 행하자니 완전하게 지킬 자신은 없고, 그냥 지나치려니 불순종의 죄인이 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으므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를 용서받고 자신은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을 하지만, 날마다 죄가 생각되고 떠 오르는 것이다. 죄인과 의인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마음의 고통이 심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믿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도 율법에 대해 심판을 받으셨으므로, 이제 율법으로 심판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성경이 증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는데도, 신도들이 계속 죄를 떠 올리고, 죄를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하는 수 없이 율법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날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대부분이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죄인들)이 나(예수님)를 믿지 아니함이라”는 말씀의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된다. 이는 예수를 믿지 못하는 자의 죄보다 더 심한 죄가 된다.
이를 성령 모독죄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성령모독죄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되어 신자도 부활생명을 받은 것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라는 것이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세상의 지배를 받았던 신도 역시 하나님으로 부터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게 세례로 표현된다. 로마서 6장 3-6절에서 예수와 함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리에서 말하는 죄, 즉 탐심의 유전으로 인한 죄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죄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한발 물러서게 한다는 것이다. 그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 왔으므로, 죄에 대한 명확한 책임의식을 결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기원과 죄의 유형에 대해서, 많은 혼란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즉 교리로 인해 신도들은 죄에 대해서 개념의 명확한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교리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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