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경에 대한 교리의 모순이 나타난다 (1) 이중 전가 이론

 

3. 성경에 대한 교리의 모순이 나타난다

(1) 이중 전가 이론

교리에 의하면 죄의 전가설(이중 전가)이 있는데, 죄인의 죄가 예수에게 전가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된다는 칭의이론이다. 죄의 전이설과 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아담으로부터 원죄가 다음 세대에 전이된다는 이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성경의 귀절은 고린도전서 5장 21절을 바탕으로 한다.『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도가 본질적으로 죄를 전혀 안 짓는 완벽한 상태가 되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루터의 표현대로 “우리는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본질은 여전히 연약하지만,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의 옷이 신도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법정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신도를 향해 "무죄, 그리고 의롭다"라고 선언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칭의라고 한다.

교리에 의한 칭의 이론은 첫째 아담 안에서 우리가 행하지 않은 죄로 인해 정죄를 받았던 것처럼,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 행하지 않은,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완벽한 의 덕분에 구원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칭의 이론에서 죄와 의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중 전가이론이다.

웨스트민스트 대요리 문답 70. “의롭다하심(칭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답은 다음과 같다.

『의롭다하심이란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행위인데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자기 목전에 그들을 의로운 자들로 여기시고 받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행한 어떤 일로 인한 것도 아니나. 오로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완전한 대속을 보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저희에게 전가시키고 오직 믿음으로만 받게 되는 것이다.』

교리는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의 순종과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발생하며, 의가 전가되며 믿음으로 받게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반론적인 말을 한다면,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어 죄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인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믿기만 하면 칭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으로 칭의가 되지만, 믿음에는 두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장사의 과정이 필요하고, 둘째는 의가 전가되기 위해서는 신도가 부활생명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어야만 얻을 수 있다. 지금 현재 그렇다는 것이다. 둘 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므로 칭의라는 말이 부합될 것이지만, 예수 믿기만 하면 칭의가 된다는 것은 모순이 있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 신도는 여전히 죄는 용서받았을지라도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신도는 죄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지금 당장 부활에 연합되지 못한 자는 죄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되며,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이며, 칭의가 되지 못한 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신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서, 니고데모라는 유대 랍비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목사는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물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모태로부터 났으므로, 두번째는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거듭나게 해 준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사는 거듭나는 것을 두번 태어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 대부분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마음의 변화 정도로 생각한다. 육체는 변화가 없으므로,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성화되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성경(에베소서 4장 22-24절)은 새사람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장사되는 것으로 로마서 6장 6절에서 표현한다. 따라서 새사람은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를 의미한다.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새사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을 받아 태어난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델베르고 대교리문답 제 90문 에 보면, “새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말씀)을 즐거이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성경은 거듭난 자를 새사람으로 표현하는데, 교리는 행동에 따른 마음의 변화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신칭의를 믿는 신도들은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신도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맛 보기는 했지만, 완전한데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화를 이루어가면서, 하나님 나라가 충만해지며, 죽은 후에 부활로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일만에 부활하심이다.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 부분을 헬라어로 보면, δικαιοῦντα τὸν ἐκ πίστεως Ἰησοῦ (디카이운타 톤 엑 피스테오스 예수) 다시 번역해 보면, “예수의 믿음의 사람을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예수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믿음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 곧 속량을 의미하고, 그 속량에 따라 부활생명을 얻어 하나님 아들들이 되는 은혜를 얻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신도에게 자동으로 부활의 은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부활과 연합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가 부활과 연합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육적으로 죽었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신도가 살아있을 때 이 믿음으로 부활생명을 얻어서 하늘에 앉히심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 된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표현한다. 장차 육체가 죽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렇게 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중 전가이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었음을 믿을 때, 죄인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전가되고, 자동으로 예수님의 의가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믿음이 있을 때, 의가 전가되는 것이다.

즉 부활생명이 주어져서 하늘에 앉히심을 얻는 것이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믿음의 진실성은 참인지 가짜인지 하나님 만이 아실 것이다.

과거에 어떤 선교사와 이신칭의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예수를 믿으면, 자동으로 천국은 결정된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상급의 문제인데, 자신이 오지에서 힘들게 선교하는 것도 다 하늘의 상급을 위해 쌓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분도 이신칭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목사나 신도들이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라는 말이 맞는 표현인가 아닌가?

예수가 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이루셨고, 내가 그것을 믿으므로, 나는 이제 그의 의를 얻어서 구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부활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없으며, 예수님과 연합되는 이야기도 없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믿음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어느 목사가 이신칭의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예화를 들어 교회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어느 사람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그의 옷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예화를 드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비행기를 탈 때, 이 벌레도 비행기에 탔다는 것이다. 벌레는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사람에 붙어있었던 이유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미국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벌레도 미국에 도착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한국은 이 세상이고, 미국은 하나님 나라라는 전제이다. 그래서 그 벌레 같은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사람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천국을 상징하는 미국에 도착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게 맞는 예화인가? 썩 좋은 예화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의미를 이해하기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벌레의 예화처럼 그 사람에게 붙었다가 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 가는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말씀이다. 육으로 분리되었던 이전의 것은 십자가의 연합으로 종료되고, 부활로 연합되어 영원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과 잠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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