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린양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어야 구원이 작동된다

 

(3) 어린양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어야 구원이 작동된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명공학이 발달해서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어도 영원한 생명은 꿈꿀 수 없는 것이다. 즉 인간들은 언젠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믿건 믿지 않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진화론은 믿는 자들은 인간의 출현을 미생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쯤되는 유인원에서 분화했을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인간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인간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인간을 영생하도록 만들지 않았느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곳에서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었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므로, 에덴동산으로 부터 쫒겨나와서 죽게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덴동산을 하나님 나라로 생각하면, 그도 그럴듯하다.

죽음은 결국 죄와 연결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이 들린다. 죽는다는 의미는 그 속에 이미 심판의 판결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심판은 아니지만, 심판받으면 결국 음부로 떨어질거야 라는 것이다.

이 세상을 감옥과 같은 곳이라 했는데, 감옥이라기 보다 잠시 머무는 유치장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판사, 검사, 변호사가 죄를 심리하고 변론하고 기소하고 판결하는 기간이 된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지은 죄에 대해서 판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최대한 유죄가 나오지 않도록 숙려하여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지 않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명백히 죄가 그들에게 있으므로,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주고 싶으신 것이다.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하나님이 대안을 제시한 것이 바로 희생양 제도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고, 다른 죄인들이 그 희생양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법정의 형태로 말을 하자면, 서면으로 제출하고 희생양이 된 자는 그것을 받아드리고, 그 결과를 처벌하는 심판관에게 제출하면, 심사해서 희생양이 된 자가 대신 죽는 것이다. 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성경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옛날 옛적 가난한 시절,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가족을 살리기 위해 사형수 대신 죽음을 택한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지만, 이것은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희생양이라는 말이다. 누가 그런 희생양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동물을 내세워 대신 죽게해서 죄를 용서한다는 내용이다. 이게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희생제사인 것이다.

희생제사의 근본 취지는 죽어야 할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회개하는 마음은 없고,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희생양 제도는 그 희생양이 죽었지만, 죄인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양과 함께 죽었으므로 새생명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양 제도는 하나의 규례가 되어버리고, 의미가 퇴색하여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죄의식도 없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상태로 간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는데, 그의 손자 야곱의 때에 기근으로 인해서 이집트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왕(바로)의 노예가 되어, 그곳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출애굽 사건이다. 하나님이 이집트에 재앙을 내려 왕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지만, 완강히 거부한 것이다.

아홉째 재앙을 거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내리셨다. 모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나 가축의 첫태생은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왕 바로는 끝까지 거부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하나님의 대변자 모세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에 문을 잠그고, 집안에서 양의 고기를 구워먹으면, 죽음의 사자가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자는 죽지 않고, 이집트 사람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이 다 죽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집트 왕의 아들, 왕자도 역시 죽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게 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자는 겉으로는 죽지 않았지만, 육적 생명이 희생양과 함께 죽은 것이다.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유월절행사이다.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자로서 희생양의 모습을 한다. 그래서 그의 피를 마시고, 그의 살을 먹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유월절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사로는 희생양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살을 불에 태우는 의식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월절 의식에 대해서,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예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다는 말에 황당해 할 것이다. 이는 상징적인 표현들로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을 이룬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다는 말의 뜻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다는 의미다. 연합된다는 것은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을 동일하게 되었음을 믿는 것이다.

피와 살은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어린양을 죽여,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에서 양의 살을 먹은 것에서 유래한다. 피를 바른 집은 이미 육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자가 된다. 죽는다는 것은 육의 몸이 죽는 것이요,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말이다. 육적인 것이 죽어야 영이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분리되어 세상으로 왔다가 다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의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을 통하여 악한 천사의 영이 세상에 와서 육체 속에 가두어지고 마지막 아담이 다시 살아난 영을 데리고 가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가는 과정에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돌아가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이게 유월절의 의미가 된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데리고 와서 데리고 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6장 54-56절『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성찬식에서 포도주는 예수의 피와 생명수를 의미하며, 잔을 붓는 것은 예수님의 흘리신 대속의 피를 상징하고, 잔을 드는 것은 신랑신부가 하나되는 것을 상징하는 축복의 잔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잔은 하나님 나라에서 들게되는 영생의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바, 빵을 떼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표현하며, 빵을 먹는 것은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을 상징한다. 개역개정은 떡이라고 표현되었지만, 헬라어 성경을 보면 빵으로 표현된다.

즉 살을 먹는 것은 하늘생명인 부활에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에 따라 그와 연합된 자도 부활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세상의 육신으로부터 오는 혈에 대해서 죽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그분 안에 들어가고, 그 분도 성도 안에 들어와 역사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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