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
(3)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
마태복음 21장 33절에서, 예수님이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다고 말한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고,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고조되는 중에 하신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시어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하는 집으로 청결하게 하셨다. 이로 인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종교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공동체에서 포도원과 농부를 바라보는 비유의 관점이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로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이 비유를 통해 신도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반역, 예수님의 희생과 구원, 그리고 모퉁이 돌의 영광을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하며, 예수님은 신도들의 삶 속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며, 신도들은 그의 가르침과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교훈적인 말을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도들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그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시다 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말하는 포도원과 농부의 이야기가 이런 내용인가 살펴 볼 일이다.
먼저, 오늘날 목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를 이스라엘에 대한 관점으로 살펴보면,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포도원 소유주는 자신의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기고 떠나며, 때가 이르면 소출을 받고자 종들을 보내는데, 농부들은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능욕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들이 겪었던 박해와 죽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은 그들을 거부하고 박해했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해 왔는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자신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해 왔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이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은 종들을 보내었지만 번번이 무시당하고 박해받자 결국 자신의 아들을 보낸다. 아들을 보내며 주인은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기대했지만, 농부들은 오히려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려는 야망을 드러낸다.
이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많은 선지자들과 종들을 보내셨지만, 최후에는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고 죽였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오늘날 목사들이 말하는 것과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말에서 모퉁이 돌의 비유를 함께 언급하셨다. 농부들이 포도원의 소유주를 배반하고 아들을 죽였을 때,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으로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을 통해 예수님의 승리와 영광을 예언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는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새로운 구원 역사를 이루실 것이며, 이는 부활과 승천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성취될 것임을 보여준다는 이야기의 결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명쾌하지 못한 의문스러운 점이 몇가지 있다. 농부가 세를 준 포도원을 이스라엘로 상징하며,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으로 말씀하고,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이 A.D.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다.
여기에서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포도원을 이스라엘이라고 비유했는데, 그들을 진멸하고 심판했다는 것은 이스라엘로 이해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포도원의 정체는 무엇인가?
둘째,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진멸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심판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지도자를 심판했다는 것인지?
셋째,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넘겨준다에서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넷째,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주는 것이 어째서 심판이라는 것인가?
여기의 의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포도원을 이스라엘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성전으로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이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성전(성소)을 두신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성전)을 두신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산울타리는 에덴의 동산과 같은 개념으로 산은 성전을 상징한다. “망대를 짓고”에서 망대는 초막집이다. 초막집은 성전을 상징한다. “즙 짜는 틀을 만들고”에서, 포도주는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포도주가 생산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희생제물을 통해서 부활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포도원(성전)을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포도원을 경작하라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 포도원을 경작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메시야를 발견하는 일이다. 죄인들이 날마다 와서 희생제물로 제사를 드리며, 성전에서 회개의 부활열매를 맺게하는데, 메시야를 발견하는 열매맺는 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포도원은 성전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에덴동산인 성전을 맡기셨는데, 소출은 없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의 의만 가득하므로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쫒아낸 것처럼, 성전에서 내 쫒는 이야기이다. 성전에 그들을 내쫒는 것은 이제 돌로 된 성전은 참 성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부활생명의 열매 소출을 원하시는데, 율법주의를 따라 자기의 의라는 열매만 생산하므로, 포도원 주인에게 줄 소출이 없는 것이다.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열매는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메시야를 발견하는 것이 부활생명의 열매이다.
종은 선지자들이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종들을 죽여버렸다. 하나님이 마지막 종(세례요한)을 보내면서 회개를 외치게 했다. 결국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요한도 죽였다. 그런데, 아들(그리스도)을 보냈는데, 아들도 죽여버렸다.
마가복음 12장 7-9절에서,『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는 것이다. 포도원(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소출이 없는 성전을 파괴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돌 성전ㅣ A.D. 70년경에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포도원을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방인)에게 임대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성전인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이방인들에게 심어주신 것이다. 이제 돌 성전이 아니라 마음 속에 성전을 두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신 것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돌 성전에서 하신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옛성전(옛사람)을 제거해 버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새성전을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돌로된 성전이 파괴되어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듯이, 성도의 마음 속에 옛성전도 성도의 성전이 아닌 것이다. 이전에는 유대인들이 옛성전에서 제사장 노릇을 했지만, 이제는 성도가 마음 속의 새성전에서 제사장 노룻을 하는 것이다.
마음 속의 옛성전에 대해서, 마태복음에서는 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이 있다는 표현을 한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되는데, 가증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가증한 것은 바로 자기라는 육신을 의미한다. 이를 옛사람으로 표현된다. 옛성전에 앉아있는 존재가 바로 옛사람이라는 것이다. 옛사람은 탐욕을 바탕으로 죄의 몸을 하고 있는 죽어야 할 존재이다. 마음 속의 새성전에 있는 자가 새사람이다.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새생명이다.
이제 포도원의 주인이 세값으로 소출을 받으러 올 때, 농부는 부활생명이라는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쭉정이는 옛사람의 것, 알곡은 새사람의 것으로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우리 성도들은 부활의 첫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활생명을 받고, 또 성도들은 다른 신도들에게 부활생명을 생산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계속 확장되는 것이다. 부활의 열매가 성도의 심령 속의 곳간에 가득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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