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원죄의 전이설과 죄의 몸
(3) 원죄의 전이설과 죄의 몸
웨스트민스트 대요리문답 26에서, 원죄는 어떻게 우리 시조로부터 그 후손에게 전해지는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원죄는 우리 시조로부터 그 후손에게 자연 생육법으로 전해지므로 우리 시조에게서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후손은 죄 중에 잉태되어 출생하게 된다.』
아마도 시편 51편 5절을 인용하여 하는 말일 것이다.『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 말은 죄가 전이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죄의 몸이 전이된다는 말인가? 살펴볼 일이다. 예수님의 예를 통해서 보면, 예수님이 죄없이 태어나신 것에 대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으로 태어났으며, 성경(베드로전서 2장 22절)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는 죄를 범하지도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가 죄가 없다면 모르지만, 죄인이라면, 원죄의 전이설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데, 마리아로부터 몸을 부여받았더라도 죄가 전이되지 않았다는 것은 남자만 죄를 전이시키고, 여자는 죄를 전이시키지 않는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죄의 유전적인 요소를 제거할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육으로는 사람의 몸을 입어 사람의 아들이 되고,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리에서 말하는 원죄의 전이설은 타당하지 않다. 예수님도 사람의 아들로서 죄가 아니라, 죄의 몸을 가진 것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에스겔 18장 20절에서도 분명하게 말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만일 어떤 어머니가 죄중에 잉태한 것 때문에 자식에게 죄가 전가된다고 하면, 얼마 전에 어떤 여자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갔는데, 그녀가 임신한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고, 본의 아니게 감옥에서 출산하게 된 것이다.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와 같이 그 죄가 전이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 어머니와 격리되어 누군가가 양육하고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교리는 죄의 전이를 억지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모양이다.
원죄설에 의하면, 죄가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고 하는데, 후대의 어떤 사람이 유전된 죄를 바탕으로 또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이 지은 죄의 책임을 100% 그 사람의 책임으로 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 있었으므로, 이차적인 죄의 책임을 어느 정도는 아담에게 돌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죄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분배해 줄 것인가 생각해보면 역시 원죄설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하는데,
이 문장을 보면 원죄설의 타당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을 번역해 보면, 다른 의미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 부분의 헬라어는 (디아 투토 호스퍼 디 에노스 안드로푸 헤 하마르티아 에이스 톤 코스몬 에이셀덴) 인데, 다시 번역하면, “죄가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이, 죽음 또한 죄를 통하여 들어왔나니” 라는 것이다.
위의 문장은 한 사람 때문에 죄가 들어온 것처럼 번역이 되어, 원죄설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나, 죄가 아담이라는 육체를 매개체로(~통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죄의 몸이 된다. 즉 죄의 통로라는 말이다.
다시 번역한 문장은 죄가 첫 사람 아담을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그 다음의 사람도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체를 통하여 자기 죄가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가 아니라, 죄의 몸이라는 것이다. 죄의 몸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것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의 몸에 대해서 죽으시므로 종결시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절에서는, 죄의 몸이 죽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신도들이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죄의 몸(소마 하마르티아스)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 속에는 죄의 몸이 있다. 이게 아담으로부터 전이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로부터 벗어난다고 한다. 즉 죄의 몸이 죽어버리므로, 죄가 없다는 말이다. 죄의 몸이 있으므로, 죄가 된다는 말이다. 죄의 몸과 죄와의 관계를 살펴 볼 일이다.
죄의 몸에 대해서 설명한 성경 내용은 없지만, 반대적인 용어로서 영의 몸이라는 것이 있다. 육의 몸과 상대적인 몸으로서 영의 몸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표현된 용어이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육의 몸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의미상 육의 몸이 죄의 몸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헬라어로 육의 몸은 소마 프쉬코스로 표현되었다. 프쉬코스의 원형은 프쉬케로서, 개역개정은 영혼, 혼, 생명, 목숨, 마음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그러나 정확히는 육적 생명이다. 육적 생명은 한정된 것으로 죽어야 할 생명인 것이다. 육적 생명이 죄의 몸이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고, 마지막 사람 아담은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 의의 몸(부활생명)을 전해준 것이다. 그것의 설명이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나타난다.『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 첫사람이며, 죄의 몸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바,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났다고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은 죄의 몸의 사슬을 끊은 것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죄의 몸은 죄를 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죄의 몸이 죽었으므로, 죄도 없는 것이다. 죄는 육체에, 또는 영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고계시는 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죄인이 죽어버리면, 기소하지 않는데, 죄가 있어도 죄의 근본인 죄의 몸이 없으므로 그렇게 하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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