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구원은 세례로 표현된다

 (4) 구원은 세례로 표현된다

오늘날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교회 안에 있다.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 때문이다. 구원은 내가 그렇게 단순히 믿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을 들으면 큰 낭패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례받는 것에 대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고 입사 지원서를 내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이 된다. 회사에 취업하려면 서류를 작성하고, 그 서류를 회사에 보내면, 무조건 회사에 입사되는 것이 아니라, 서류를 검토해보고, 확인하고 심지어는 면접까지 보고 그래서 입사 여부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세례 역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된다.

신도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을 할지 모르지만, 이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한 결과이다. 세례는 구약성경에서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된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를 살리기 위해 어린양들이 대신 죽었다. 백성들은 어린양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출애굽하자 말자, 홍해바다가 가로막혔다. 이집트의 군대는 뒤쫒아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홍해바다가 갈라졌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를 건넜지만, 바로왕의 군대는 홍해바다에서 수장당하고 말았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지만, 곧 바로 그들을 추격하여 다 죽이려고 작정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수장당한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물세례로 표현한다. 이집트 병사들은 물에서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새로운 땅으로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앞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서 확인하자고 요구하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시어 정탐한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모세에게 보고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두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들을 광야에서 38년간 돌다가 죽도록 했다. 출애굽을 시작으로 보면 40년이 된다.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된 것이다. 요단강은 예수님이 세례받던 곳이다. 요단강의 세례를 성령세례로 비유한다.

홍해를 건넌 것은 물세례, 요단강을 간너는 것은 성령세례로 비유한다. 하나님의 전격적인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홍해를 건너 물세례를 받았지만, 백성들의 믿음없으므로, 요단강을 건너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무려 38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은 침례의 한 모양인데,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형식의 의식을 한다. 그런데, 그 의식 속에는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을 믿음으로 의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믿음의 의식대로 당장 이루어지는가 라는 것이다.

물세례의 의식과 성령세례의 실제 집행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의식은 인간의 손으로 하는 것으로 이 세례의식의 진정성을 검토하는 절차가 이루어지는데, 그게 바로 사탄의 검증이다.

예수님이 세례받고 곧 바로 성령이 광야로 이끌게 했으며, 예수님은 40일간 금식한 후에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다. 사탄의 시험은 세가지로 요약되며, 내용을 보면 율법주의, 신비주의, 기복주의와 연관된다.

세례받고자 하는 신도가 의식을 행했지만, 그 믿음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의 시험을 거쳐, 하나님이 구원을 확정시켜 성령으로 도장을 받게 한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이다. 사탄이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열왕기상 22장 22절에서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북이스라엘 아합과 남유다 여호사밧이 동맹해서 아람 군대와 싸우는데, 선지자들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아합이 400명의 가짜 선지자에게 물어보니 싸우면 이긴다고 말했는데, 참 선지자인 미가에게 물어보니 싸우면 화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 열왕기상 22장 22절의 말이다.

한 영은 사탄이다. 사탄은 마음의 탐욕을 밝혀내는 역할을 한다. 마치 미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범죄인이 자신의 마음 속의 탐욕을 실행에 옮기게 해서 잘못이 그에게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유혹이란 유혹받는 자에게 탐심과 욕망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아합에게 하필 전쟁터로 끌어 내어죽게 하는 유혹이 닥친 것은 그의 내면에 군사적 세력 확장의 탐욕이 가득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악인들이 사망의 길에 이르는 까닭은 다만 그들이 자기 욕심에 끌려,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자신의 섭리 가운데서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

이렇게 세례의식이 선포되어 사탄의 시험을 거쳐 하나님께 상달되면, 곧 바로 성령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수십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예수님 당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그 분이 성도의 주인이 되고 그 성도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영적 혼인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물세례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물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으로 나가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세례는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생명으로 나가는 것이다. 로마서(6장 3-5절)에서도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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