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무화과 나무의 비유

 

(5) 무화과 나무의 비유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 성전이 무너질 것과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며, 큰 환란이 일어날 것이며, 환란 후에 천체의 이상 징조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며, 이 때 인자의 징조가 보일 것이며,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드셨다.

마가복음13장 28-30절에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노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고 말한다.

대부분 교회 신도들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 대해서, 종말 때 예수님의 재림의 상황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비유에서 나오는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열매가 없던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자 말라 버렸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AD 70년 멸망했고 1878년 동안이나 멸망의 상태로 있었으며, 예수님께서 3년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으나 열매를 얻지 못하시자 이스라엘은 멸망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종말 때, 예수님의 재림 때의 상황이라고 신도들은말한다. 예수님의 재림 때의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라고 제자들이 질문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재난의 시작을 보면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는 의미다. 인자가 도래하는 정확한 그 날은 알 수 없지만 그 시대는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이에 해당되는 말씀은 재난의 시작들에 관한 징조들이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이스라엘에 흔히 있는 무화과나무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앞에서 말한 바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미혹 등의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을 알라는 의미로 받아드린다. 이처럼 무화과 나무를 자연계의 한 변화로 보고, 자연계의 변화를 통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듯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을 통해 그의 재림이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무화과나무를 한 예로 드신 것이지, 꼭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보고서 그 회복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이 무화과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내는 것이라면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 신도들이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의 상황과 그 상황에 비추어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인가, 아니면 자연계의 현상의 비유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과 말씀을 나눌 때, 성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치 세상의 종말 때처럼, 어떤 상황에서 나타날 징조를 말씀하시고 그 징조로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드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전에 관한 이야기인데,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으로 확대 해석으로 나타났고,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종말의 한 징조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은 마태복음 24장을 종말장이라고 규장짓는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돌 성전과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돌 성전이 무화과 나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마르게 하셨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부활생명의 열매가 없다는 말이다. 돌로 된 성전에서는 이제 부활생명의 열매가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자신의 몸인 성전의 무너짐으로 비유하셨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바, 자신의 부활하신 몸인 성전이 다시 일으켜 질 것으로 비유하셨다.

열매없는 돌 성전은 무너질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는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들어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실제로 성전이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이의 예표로 돌 성전도 무너졌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며, 이와 연합되는 자도 부활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종말의 시대에 나타날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열매를 맺는가에 따라 선의 나무가 되기도 하고, 악의 나무가 되기도 하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연해지면, 곧 이어 열매를 맺게 되는데, 선의 열매를 맺게 되면, 부활생명으로, 악의 열매를 맺게되면 율법주의로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화과 나무가 부활생명으로 나타나면, 성도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옛성전(옛사람)은 무너지고, 새성전(새사람)은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성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종말은 옛사람의 죽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재림 때는 새성전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처럼 신비스럽게 나타나는 모습으로 비유하셨다. 옛사람이 죽는 모습을 기근과 지진, 큰 환란으로 표현하였다. 심령 속의 새사람의 등장을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무화과 나무가 악의 율법주의로, 열매없는 나무가 되면 심령속의 성전에 자기가 주인이 되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앉아있는 모습이 된다. 이를 옛성전이라고 하며, 반드시 무너져야 함을 말해준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옛성전에 자기라는 존재가 왕노릇하는 신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이다.

마태복음 24장 15-18절『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신봉하고 있는 모든 자들을 말한다. 산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율법을 신봉하는 자들은 율법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를 이루어라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말한다. 비록 환란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구원의 길임을 깨닫고, 모든 율법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장 48-50절『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말을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혼자 묵상하면서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나다나엘의 존재성에 대해서 보았다는 것이다. 나다나엘은 율법에 충실한 자였다는 말이다. 그는 율법 속에서 희생제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과 연관지어서 앞으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가 반드시 올 것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복음 1장 47절『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돌로스) 것이 없도다』

간사하다라고 번역한 돌로스는 미끼, 섞어 버리는 것, 계교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비진리와 섞이지 않다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심중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자임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나다나엘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라고 비하적인 말을 한 것이다. 선하다라는 말은 메시야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다나엘이 생각하는 나사렛은 시골스러운 촌 동네의 의미를 갖는가? 그가 생각하는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메시야이지 나사렛이 아니라는 말이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말로 성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메시야가 나사렛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나사렛 예수라 칭함을 받았다. 그 이유는 나사렛이 나실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사렛과 무화과나무는 상반된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실인은 삼손과 사무엘을 떠 올리게 한다. 반면 무화과나무는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유대지도자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무화과나무에서는 나실인으로서의 메시야를 볼 수 없단다. 그래서 나에게로 와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분명히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상황을 알고 나다나엘이 궁금해 하던 그 대답,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를 예수님이 하신 것으로 그는 받아드린 것이다. 이 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 메시야이구나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보다 더 큰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1장 51절에서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다.

범죄한 천사의 영이 심령 속의 옛성전으로 들어갔으나, 이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성전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신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자들은 빨리 부활생명인 그리스도에게로 달려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구원자인데, 율법 속에서 구원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복음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현재적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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