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믿음
(6) 믿음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대상을
바라보는 신도의 믿음이 서로 동일한 선상에 놓일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도가 바라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그 능력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있다. 또 믿고자 하는 신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확신하고 믿는 것이다. 즉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함을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능력의 믿음은 항상 100%인데, 믿는 자가 과연 100%로
다가 올 수 있는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표준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헬라어나 영어 번역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라는 말로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100%인데, 믿는 자가 99%이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는데, 아브라함이 99세가 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년 이맘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속으로 웃었는데, 하나님이 속으로 웃은 것을 지적하자 웃지 않았다고
변명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99세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을 이기고, 멜기세덱이라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 죽은 것 같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믿고 순종하게 된다. 100%의 믿음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육의 마음이 아니라, 영의 몸으로 태어난 자의 영의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육의 마음에서 자기의 결단이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를 부인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났지만, 계속 육의 마음이 반응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씨의 약속을 하지만 86세는 이스마엘을 낳는다. 오늘날 우리도
영적 체험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배운다고 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으면 씨의 약속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은 신도들의 영적 성장을 통해서 점차 강해짐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믿음도 자라지만, 결국 100%의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 즉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자기를 부인하는 자, 육적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주체가 나인가 예수인가?
믿음에는 두가지가 있음을 발견한다. 주체가 나인 경우이고,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경우이다. 주체가 나인 경우는 앞에서 지적하다 싶이 100%로 달려가는 믿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면 100%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영적 성장을 믿음의 주체로 생각하는 신도들은 100%의 믿음을 향해 달려가다가, 자신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그리스도의 믿음이 된다.
마음은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이 있는데, 육의 마음은 세상을
향하고, 믿음의 주체가 내가 된다. 그러나 영의 마음은 성령의
마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마음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이 바로 예수가 주체가 되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가
되는 것이다.
첫째, 주체가
나인 경우에 대해서 살펴보면,
하이델베르그 제 21문에서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계시하신 모든
것은 진실하다는 것을 아는 지식이다. 즉 그리스도의 순전한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도 역시 죄를 용서받았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의롭게 되었으며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내게 불어넣어 주시는 것을 믿는 굳건한 확신이다.』라고 답한다.
굳건한 확신은 내가 신념을
가지고 믿는 것인데, 이는 상황에 따라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내가 주체가 되어 믿는 믿음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23절에서, 믿음이 오기 전에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다고 말한다.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100%의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말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믿는 믿음으로서, 100%의 믿음이 아닌 율법아래 있는 믿음을 의미한다.
칼빈은 제네바 요리문답에서 믿음을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표현했다. 인간의 제일 삶의 목적을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며, 그래서
인간의 최상의 행복을 여기에 연결시킨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동물보다 더 비참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가운데
있다고 말을 한다.
칼빈의 제네바 대요리 문답 7에 의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바르게 돌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의 거룩한 뜻에 복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의 모든 어려움 중에서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분 안에서 구원과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온다는 것을 마음과 입(행위)으로
표현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복종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고, 구원과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만 나온다는 그런 믿음이다.
이 역시 믿음의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의미한다. 이런
믿음은 결국 마음과 입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라는 주체는 육의 마음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믿음은 어떤 것인가?
로마서 3장
21-2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디아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 다시 번역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믿는 자의 믿음과 같다는 의미로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즉 주체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는 믿음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나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믿음이다.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나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있는 그러한 믿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이 아니라면,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대요리 문답 73. “믿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의롭게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답은 다음과 같다.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의롭게 함은 믿음에 항상 동반하는 다른 은혜 때문도 아니고 믿음의 열매인
선행 때문도 아니며 믿음의 은혜, 혹은 다른 어떤 행위가 그에게 의로 돌려져서도 아니다.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을 받아 적용하는 방편일 뿐이다. 』
교리에
의하면,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을 받아 적용하는 방편이다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는 방편이지만, 결국 신도가 주체가 되어 믿는 믿음이 된다.
이와 같이 믿음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결국 내가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믿음이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곧 성령이 인도하는 그런 믿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변하지 않는 믿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은 육적 마음의 믿음이 아니라, 영적인 마음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100% 능력의 소유자이시고, 믿는 자가 이와 상응하여 100% 믿음을 소유할 때, 능력과 믿음이 연합되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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