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순종에 대해서
(8) 순종에 대해서
순종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기쁘게 따르는 마음에서 나오며,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우선시하는 마음을 필요로 하며, 때로는 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선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따르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신도들은 말한다.
그래서 믿음과 순종이 연결되고, 믿음은 순종의 동기가 되고, 순종은 믿음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삶의 태도가 어떠할 것인가를 염두에 둔 것으로, 근본적인 의미의 순종과는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의미의 순종은 구원에 관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믿음과 그 믿음을 전하는 복음에 관한 순종인 것이다. 삶의 태도에 관한 순종을 강조하다 보면, 복음이 아니라,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이 말하는 순종과 거리가 말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교리에 의하면, 순종을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기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따르는 순종, 이를 수동적 순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능동적 순종은 자기의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정해놓은 율법의 규칙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지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순종이다.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은 서로 혼합될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수동적 순종은 복음에 이르도록 하고, 능동적 순종은 율법주의로 향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리는 예수님이 수동적, 능동적 순종 두가지 요건을 다 충족시켰으므로, 신도들에게도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즉 복음과 율법을 섞으려고 하는 것이다.
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그로 대속의 죽음을 하시게 했는데, 그리스도가 주어진 계획에 따라 순종하여 그 뜻을 이루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죄의 형벌을 지불하여 그의 모든 백성의 부채를 갚음으로서 수난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를 예수님의 수동적 순종이라고 교리는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시므로 그리스도가 의가 되시며, 죄인들에게 의를 얻게할 조건으로 죄인을 위하여 율법을 준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교리이다.
그래서 이중 전가이론의 근거가 되며, 죄인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죄를 용서받은 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 10장 4절에서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라고 말한다. 율법의 마침은 율법에 대해서 죽으시므로, 마치시는 것이며, 의는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 대해서 죽으시므로, 부활시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10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신도들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은 이중 전가이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을 때,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는 하늘에 앉히었다고 말한다.
교리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스스로 고난과 죽음에 자신을 종속시킨 것은 그의 수동적 순종의 일부이고,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종속되어 살았으며 종의 형상으로 활동하셨다는 것은 능동적 순종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동적, 능동적 순종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의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과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것을 혼합시켜 놓은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 즉 수동적 순종 만으로는 완전한 의에 이르지 못하며, 예수님이 율법에 순종하는 능동적 순종이 함께 있어야 완전한 의를 얻는다는 의미이다. 이 두가지를 믿을 때 구원을 얻는다는 순종의 교리리다.
예수님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교리로 주장하는 자들은 오늘날 신도들에게도 적용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동적 순종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한 죄의 용서와 능동적 순종인 율법을 완전히 지켜 의를 이루듯이, 신도들도 예수의 피를 통하여 죄 용서를 받고, 그리고 신도들이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순종을 말한 때,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혼합시켜 말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 공동체는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위를 강조하므로서 더욱 능동적 순종을 하도록 유도한다. 야고보서 1장 22-25절에서“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어보면 마치 율법의 조문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의미로 들린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율법을 통해서 갇힌 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나가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온전한 율법은 바로 율법 속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행하는 일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율법의 조문에서 헤메이던 율법주의를 청산하고, 율법 속의 복음을 널리 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복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순종은 100%의 믿음에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신도의 믿음이 일치하는 가운데, 순종이 나오는 것이다. 성경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절차적인 제사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순종이 훨씬 더 중요함을 말해준다.
무조건 성경에 ~이렇게 말했으니 지켜야 한다는 순종은 율법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근거한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으로 하는 순종이 되는 것이다.
수동적 순종이니 능동적 순종이니 하는 교리에서 말하는 순종은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하나됨을 완전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간격을 벌려놓는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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