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과의 전쟁과 탈취물에 대한 처리(1)
미디안과의 전쟁과 탈취물에 대한 처리(1)
민수기 31장1-8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무장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 여호와의 원수를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전쟁에 보낼지니라 하매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모세가 각 지파에 천 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먼저 바알브올 사건으로 여호와의 징계를 받게 했던 미디안들을 전멸시킴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시작을 알리는데, 미디안 공략에 관한 기록만 제시되어 있으나, 이때를 전후하여 모세의 주도로 요단 동편의 땅도 점차 함락시켜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던 미디안 정복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가나안 정복전쟁의 성격이 단순한 영토확장과 노획물 수탈이 아닌, 우상을 제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미디안들이 이스라엘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했으므로 미디안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이면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원수를 갚는다는 것에 대해서 원수를 갚지 말고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레위기 19장 17-18절「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나캄)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나캄은 싫어하다, 앙갚음하다를 의미한다. 개역개정에서 원수를 갚지말고 라고 함으로서, 이스라엘의 대적을 사랑하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대상이 원수가 아니라 형제이다. 그래서 형제를 증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디안사람들은 형제가 아니라 대적이므로, 앙갚음하라는 것이다. 앙갚음은 우상을 부셔라는 의미에서 죽이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아사프 엘 암)
아사프는 모으다, 빼앗다, 받다 등의 의미. 엘은 ~을 향한. 암은 백성. 다시 번역하면, “그 후에 너희들은 백성들을 다시 모을 것이다.”
미디안과 전쟁에 차출된 군인들이 미디안을 진멸시킨 후에 백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표현이다. 암은 백성, 지파를 의미한다.
미디안을 전멸시키는 것이 모세에게 맡겨진 최후의 사명임을 시사한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셨다는 뜻이 된다.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투를 위해 출전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이때 모세는 승전에 필요한 두가지를 준비시켰다. 각 지파에서 천명씩을 소집하여 열두지파에서 만 이천명의 군대를 이루게 했다.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전쟁에 출정할 수 있는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선발하여 출전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정예부대를 편성하는 것이다.
이는 사사기 시대, 미디안의 공격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세워 전쟁에 나갈 자를 선택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사사기 7장2절『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32,000명으로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적들의 수는 사사기 8장 10절에서 135,000명으로 소개한다. 많지 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 이유는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믿음의 정예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사사기 7장 6-8절『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백 용사의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즉 비록 숫자 면에서는 엄청난 열세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로 굳게 무장되었기에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상의 산당을 제거하게 하시고, 군대를 선발하시는 등 모든 절차를 끝내신 후 비로소 기드온에게 승리를 다시 확증시키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 중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선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으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켈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매”
이 전쟁이 바로 우상을 깨뜨리는 여호와의 전쟁임을 나타내는 명령이다. 비느하스는 칼을 쓰는 장수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 성물을 가진 제사장으로 참전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사장으로서의 그의 참전은 결국 이 전쟁이 단순히 영토 확장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상숭배자들을 척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목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제사장 비느하스는 바알브올 사건 때 잘 보여진 바 결코 불의를 용납치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거룩한 전쟁에 함께 출전할 수 있는 최적격자였다.
성소의 기구들이라고 번역된 켈리는 도구, 그릇, 운반차, 항아리, 현악기 등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전쟁에 여러가지 기구를 사용하게 하셨는데, 대표적인 것이 항아리이다.
사사기 7장 16-19절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남자는 전쟁에 참여한 미디안 군인들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군인들은 다 전멸시켰지만, 미디안 사람들은 이후에도 계속 사람들이 늘어나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 사사기에 등장한다.
미디안의 왕들은 본래 미디안 족속 중 막강한 세력을 지녔으나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복당함으로써 그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 시혼의 봉신이 된 자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해 여호수아 13장21절에서는 시혼의 방백으로 언급하였다. 이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여기서 살해된 미디안의 다섯왕들은 시혼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독립된 행정 체계로 각각의 도시들을 다스리는 도시 국가의 왕이였음을 알 수 있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켰던 발람의 최후는 비참하게 끝났다. 즉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사악한 꾀를 제공함으로써 끝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미디안은 모세와 인연이 깊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에서 적대적인 관계로 변하는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우상으로 오염시키려 한 이유가 된다. 이스라엘의 적은 우상을 섬기게 한 나라와 민족들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으로 인해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오늘날 성도의 가장 무서운 적은 우상이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이 더 무서운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은 자기들이 생각하고 집착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정의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본적이 없으며, 알 수 있지도 않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므로,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연합이라는 말은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신도 자신도 저렇게 죽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를 생각하면서, 신도 역시 부활하였음을 믿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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