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에 대한 규례(2)
서원에 대한 규례(2)
(민수기 30장 6-16절)
6-7.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미브타) 그의 입술(샤파)로 말하였으면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처녀가 결혼을 하면, 남편이 가정의 대표가 된다. 왜냐하면, 남편은 머리(그리스도)에 해당되며, 아내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의미한다.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이 부분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다시 번역하면,
וְאִם־הָיֹ֤ו תִֽהְיֶה֙ לְאִ֔ישׁ וּנְדָרֶ֖יהָ עָלֶ֑יהָ אֹ֚ו מִבְטָ֣א שְׂפָתֶ֔יהָ אֲשֶׁ֥ר אָסְרָ֖ה עַל־נַפְשָֽׁהּ׃
워임(임) 하요우(하야) 티히예(하야) 르이스(이쉬) 우너달레아(네데르)
알레하(알) 오우(오) 미브타 스파테하(사파) 아세르 아스라(아사르)
알 나프사(네페쉬)
임은 영어의 if에 해당한다. 그리고 하야 하야가 반복되는데, 하야는 존재하다, 되다, 발생하다, 생기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하야 하야는 강조하는 의미도 있으나, 앞의 하요우는 문법적으로 칼 동사의 부정사, 뒤의 티히예는 칼 동사이다. 칼 동사는 능동형 동사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은 떨기 나무 불꽃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하야 아세르 하야(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바 있다. 아세르는 관계 대명사이므로, 하야 하야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하야 하야)”는 여호와이다. 따라서, 하요우(하야) 티히예(하야)는 여호와라는 의미가 된다.
이쉬는 남자, 미브타는 경솔한 발언이다. 아사르는 묶다, 알은 그녀 자신이다. 네페쉬는 육적 생명을 의미하며, 혼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목숨이라고 함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만일 여자가 남자를 여호와로 받아드리며, 성급하게 자기 입술로 자신을 목숨 위에 묶거나, 서원을 하였다면”이다.
이 서약도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묶는 것을 의미한다. 담보로 묶는 것은 율법주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남자(그리스도)는 여자에게 여호와와 하나되는 일을 해 보라는 것이다.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스스로 율법에 얽매여 의를 이루어 보라는 것이다. 율법주의 신앙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게 된다.
8.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듣는 날에(베욤 솨메오),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욤은 하루를 뜻하기도 하지만, 서원을 듣는 날이 된다.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냐 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가 되는 것이 영적 혼인관계로 설명된다.
민수기 30장 8절을 다시 번역하면,
“만일 여자가 목숨 위에 자신을 묶고 경솔하게 서약을 한 것을 남자가 듣고 그에게 허락을 하지 않으면 남자는 그 날에 여자를 풀어주고 서약을 단념시킬 것이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여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율법주의로 나가지 않고, 의를 찾아보겠다고 한다면, 율법주의 그물에서 자유를 찾게 해 줄 것이다.
9.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모든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는 남편이 없는 여자를 의미한다. 남편이 없다는 말은 이들에게 아비나 남편 등 자신들의 문제를 책임져 줄 권위자가 없는 자들로서 곧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서원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했다.
디모데전서 5장 5절「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영적으로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결심이나 서약은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서원이지만, 결국 하나님에게 하는 서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을 떠난 자라도,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10-12.부녀가 혹시 그의 남편의 집에서 서원을 하였다든지 결심하고 서약을 하였다 하자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고 금하지 않으면 그 서원은 다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은 다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무효하게 하면 그 서원과 결심한 일에 대하여 입술로 말한 것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나니 그의 남편이 그것을 무효하게 하였은즉 여호와께서 그 부녀를 사하시느니라
이 부분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가 서원한 경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남편 있는 여자가 남편과 상의없이 서원할 수는 있으나, 그 이행 여부에 대해서는 남편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라야 했다. 이때 남편이 그 서원한 사실을 듣고도 금하지 않으면 그 서원은 효력이 있다. 그러나 남편이 금하게 되면 그 서원은 절대적으로 무효가 된다. 이것은 딸에 대해 가지는 아비의 권한과 동일하다.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무효하게 하면 그 서원과 결심한 일에 대하여 입술로 말한 것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나니”
“무효하게 하면(야페르)” 야페르는 파괴하다, 깨뜨리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파라르에서 유래하였다. 결국 이 말은 자신의 아내가 자기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께서 원한 것을 남편의 권위로 중간에서 깨뜨린다면, 결과적으로 그 서원한 것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13-15.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그의 남편이 여러 날이 지나도록 말이 없으면 아내의 서원과 스스로 결심한 일을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에 그의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므로 지키게 됨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하게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이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고유한 권한을 제시한 것으로, 남편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아내의 문제에 깊히 관여할 수 있는 권위자이며, 아내는 하나님 안에서 보호받고, 은혜를 누리는 자로서,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공동 운명체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두 인격체의 대표자가 남편이며, 이러한 가정의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짐을 알 수 있다.
아내의 서원 내용을 직접 보고 받고도 그 남편이 즉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침묵하면 그것은 곧 묵시적 동조로 간주되어, 아내는 즉시 그 서원을 이행해야만 했다.
“그의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아하레)에 그것을 무효하게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아하레는 지연하다, 방해하다, 오래 머무르다 로서 시간을 오래 지체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남편이 이렇게 시간을 경과시키는 것은 일종의 아내의 서원에 대한 묵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
남편이 아내의 서원 사실을 듣고서도 얼마 기간의 시간을 침묵으로 지체한 후 나중에 갑작스레 그 서원의 무효를 선언하는 것은 아내와 하나님 사이의 서원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되며, 더 나아가 아내에게 서원 불이행의 죄를 짓게 하는 결과가 된다. 이때 남편은 아내의 서원 파약에 대한 죄책을 아내 대신 지고 모든 율법상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즉 남편은 어린 암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 죄의 용서를 받아야 했다. 만약 남편이 죄책을 회피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징계를 당하게 된다.
16.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규례니 남편이 아내에게, 아버지가 자기 집에 있는 어린 딸에 대한 것이니라
이 부분은 최종 결론으로 가정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아버지와 남편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있다. 덧붙여 이 내용 속에는 권위를 부여받은 자가 지니는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를 통한 복음과 율법주의에 대한 말씀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하나님은 율법주의를 주장하고 나가는 자에게 막지 않으시고,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라고 하신다. 결국 책임은 율법주의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를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율법의 조항을 거두어 들이시고, 복음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그 모든 책임은 하나님이 스스로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와 연합하여 죽은 자는 죄에 대한 책임으로 부터 벗어날 뿐만 아니라 부활생명이라는 놀라운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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