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
(3)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
오늘날 신도들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적 정체성이 제자들에게 드러난 영광스러운 사건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도들은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서 권능을 행사하는 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엄청난 역할을 한 두 존재가 눈 앞에 나타났으므로, 예수님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분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임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신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으며,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눈처럼 희어지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셨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부활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예수님이 율법에 의한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의 대표적 인물로,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부활을 상징한다. 율법 속의 모세를 통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예수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한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미리 예고편으로 보는 것이다.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본체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변화산에서 이들의 등장은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이루시어, 제자들에게 누리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변화산 이야기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표이다.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율법에 따라 죽어야 할 예수의 육적인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부활의 예표이다. 그는 불마차를 타고 변신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일 부활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이 보여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인데, 제자들이 부활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단순히 하나님의 신성을 보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율법에 대해서 죽고, 하늘로부터 태어나야 하는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열왕기하 2장 11-14절에서,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라고 한다. 이 부분을 히브리어로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며 영적 대화를 나눌 때”이다.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이것도 다시 번역해 보면, ”불수레를 끄는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 바람에 의해 하늘 안으로 들어가더라” 하늘로 번역된 샤마임은 천국을 의미한다. 즉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이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에 대한 모형을 보여주신다. 불수레와 불말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육체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에서, 겉옷은 죽어야 하는 육의 몸이며, 변화된 엘리야의 몸은 영의 몸을 예표한다.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도 자기의 옷을 둘로 찢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연합된 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로 치고, 엘리사도 자기의 찢어진 옷으로 물로 치니(물세례) 물이 갈라지고(성령세례), 엘리사는 강을 건너게 된다.
엘리야가 갑자기 육체가 변하여 불마차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사람들은 말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나아가 신도의 심령 속,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일어나게 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서, 엘리야처럼 몸(영의 몸)의 변화와 하늘로 올려지는 그런 모습의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엘리야의 영으로 세상에 온 세례요한처럼, 성도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리야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세례요한과 같이 엘리야의 영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과 같이 신도들도 이를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신도들에게 적용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경험되는 것도 아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과거 2000년 전의 사건으로, 이를 신도에게 적용하는 것이고, 부활도 물론 신도들이 대부분 육체가 죽어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치부를 하는데, 현재적 부활은 더욱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든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변화산에서 일어난 것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세명의 제자들만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 변화산 사건은 그저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도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임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예수와 함께 죽었는가 그리고 내가 지금 예수와 함께 부활생명을 받아서 하늘에 앉히심을 받은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변화산 사건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제자들도 잠깐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 속에서 그 경험이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 경험 속에서 초막을 짓고 살고 싶어했다. 현실성 있는 이야기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도 세상에서 이런 경험을 꿈꾼다면 베드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경험해보지도 않았지만, 믿음을 통해서 영적으로 이 사실을 누린다면, 예수님이 보여주고자 하셨던 목적이 어느 한 사람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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