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정한 동물과 정한 동물

 

(3) 부정한 동물과 정한 동물

민수기 11장에서 동물을 통해서 구별을 강조하셨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나누신 것이다. 이 동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11장 1-8절까지는 땅의 짐승들의 구별을, 9-12절까지는 물고기의 구별을 13-19절까지는 새들의 구별을 하셨다. 20-23절까지는 날개 달린 곤충을 구별하셨다.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별을 의미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동물의 구별을 통해서, 복음을 지향하는 자와 율법주의자로 구분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육지의 모든 짐승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시면서, 먹을 수 있는 짐승의 외형과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고 한번 삼킨 음식을 다시 게워 내어 새김질하는 것. 곧 소와 양, 염소 등이 이에 속했다.

어떤 동물이 정하고 어떤 동물이 부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동물은 모두가 다 같은 동물이다. 그러나 정한 동물을 특별히 구별하였기에 나머지 동물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왜 구별하셨는가? 사람들은 위생적인 문제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부정한 동물은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부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세상적인 생각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동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깊히 새김질하듯이 통찰하라는 것이다.

또한 굽이 갈라지듯이 구별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이다.『새김질하는 동물, 굽이 갈라진 동물』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새김질하는 동물을 통해서 복음으로 나가는 자, 그렇지 않은 자는 율법주의자로 상징하는 것이다.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으로 낙타와 사반(바위오소리, 바위너구리), 토끼를 소개하며, 이것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부정하니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등장하는 부정한 짐승들이 창조 때부터 부정한 것으로 된 것이 아닌, 이스라엘 자손을 세워 주시는 율법의 관계에서 부정한 부류로 분류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세우시면서 그 동물들을 언약의 도구로 삼아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도록 하신 것이다.

굽이 갈라진다는 것은 구별된 자인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별되지 못한 자는 거룩한 자가 아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가 구별된 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마태복음 7장 6절에서“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라고 말을 한다.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팔아서, 값을 주고 사는 교회를 말한다. 돼지는 율법주의자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여전히 율법을 따르려고 하며, 죄 가운데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을 말한다.

물고기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을 먹도록 했다. 지느러미는 유영할 수 있도록 해주며, 비늘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이 동물을 통해서 사악한 율법주의자로부터 공격을 피하고 막을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 존재에 대해서 민감해 왔다. 예수님은 수많은 귀신들린 자를 치유해 주셨다. 귀신들린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이다. 부정한 동물을 먹는 것은 귀신 들린 자를 의미하며,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한 물고기, 부정한 물고기를 통해서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피라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정한 새들은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육식성 새들이다. 이 새들을 통해서 영적으로 죽이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다.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의를 이루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장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인데, 백성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의는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자기의 의를 벗어버려야만 구원받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워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들은 부정한 새들과 같은 존재들이 된 것이다.

날개와 다리가 있지만 날지도 뛰지도 못하면 부정하다는 것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 되었다.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구원이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으로 넘어 가버렸다.

오늘날도 성경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신다.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금은 언약을 상징한다. 언약 백성이라는 것이다. 빛은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빛을 소유한 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언약을 믿지 않은 자이고, 복음에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자들이다.

성경은 먹을 수 있는 짐승들을 제외하고 부정한 짐승들의 사체를 만지는 것이 부정하다고 규정했다. 누구든지 정한 방법에 따라 짐승을 도살할 경우, 소와 양과 염소 등 제사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짐승의 주검을 만질 경우 부정하게 되었다.

또한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것은 그날 저녁 곧 사체를 만진 그 날 저녁을 뜻한다. 사체를 만지는 것을 통해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를 설명한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를 율법주의자로 비유한다.

쪽발이 아닌 것은 구별되지 못한 자이며, 새김질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없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자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이다.

발바닥으로 다니는 짐승은 굽으로 다니는 동물과 대조되는 개나 고양이, 사자, 곰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들도 육식동물로서 맹수에 해당된다. 영적으로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이는 자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러한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진 자는 영적으로 죽이는 자와 연합된 자들이다. 오늘날 가짜 교회에서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함께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거짓선지자들은 독수리로 표현되고, 마태복음에서는 주검이 있는 곳애 독수리들이 모여든다고 말을 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율법주의자들이다.

땅에 기는 동물은 세상과 연합된 자를 의미한다. 하늘의 양식을 먹는 자가 아닌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사체를 먹는 동물들이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를 먹는 거짓 선지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진 자는 영적으로 죽이는 자와 연합된 자들이다. 오늘날 가짜 교회에서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함께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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